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특파원코너

[특파원 코너] 일본이 ‘삶은 소대가리’라고 했다면

하윤해 특파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켄 가우스 해군연구소(CNA) 국장과 얼마 전 전화통화를 가졌다. 화제가 북핵 문제에서 한·일 관계로 옮겨갔다. 가우스 국장은 “한국은 과거 문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일본은 과거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여기에서 갈등이 촉발된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 모두 국내 정치적 목적에서 한·일 갈등을 이용한다”고 두 정부를 함께 비난했다.

가우스 국장은 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벌써 76년이 지났다”면서 “한·일 정부 모두 ‘전후 세대’식 시각으로 싸우면서 미래 세대에 못할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우스 국장은 그러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핵 이슈가 뒤로 밀리면서 미국도 한·일 갈등 중재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미·일 ‘3각 협력’이 절대적인데, 현재 한·일 관계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문제는 워싱턴에서 가우스 국장처럼 한·일 관계에 대해 양비론을 펼치면서 중립적 시각을 갖춘 전문가가 소수라는 점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 편을 든다. ‘친한파’ 전문가를 찾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최근 만난 미국인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온갖 수모는 참으면서도 일본의 말 한마디에는 격분하는 걸 이해하기 힘들다”며 “만약 일본이 한국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라고 했다면, 한국은 국교 단절 직전까지 갔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의 일본 편들기 기류는 일본의 ‘돈의 힘’ 때문일 수 있고, 동북아 핵심 동맹을 일본으로 여기는 미국식 안보관에서 비롯된 사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북한엔 끌려 다니고, 일본에 대해선 강공 일변도 정책을 펼쳤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했던 롤러코스터 같았던 북핵 드라마도 대단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뛰어들면서 한반도 평화가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신기루가 펼쳐졌지만, 다시 제자리로 왔다. 북한은 이미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코로나19로부터 선수단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내세운 이유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처럼 도쿄올림픽을 통해 남북한이 대화의 물꼬를 만들어보겠다는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북한은 지금 조용하다. 북한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또는 핵 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는 다행히 현실화되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 사정도 마찬가지다. 북한 이슈는 뒷전으로 밀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에다 경제 재건, 불법 이민 문제 등 국내 이슈에 발목이 잡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5월에 끝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북한 이슈와 관련해 할 일은 별로 많지 않다. 극적인 대반전이 없다면,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가 활기를 찾을 가능성은 낮다. 남북 경제 협력도 미국의 대북 제재 벽에 막혀 있다.

북한 문제가 개점 휴업인 상황이 오히려 한·일 관계 복원의 적절한 타이밍일 수 있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도 외교의 기술이다. 도쿄올림픽에 맞춘 문 대통령 방일을 놓고 한·일 정부가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볼썽사납다. 한·일 모두 양국 관계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했다는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앙금을 푸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북한을 대하듯, 일본이 미국을 대하듯 상대방을 대한다면 최고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 텐데”라는 한 미국 전문가의 지적에 울림이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