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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 52시간제를 보는 또 다른 시선

김린 (인하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징역형은 일반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징역형은 수형자의 시간 주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형자는 자신이 원하는 때에 사람을 만나거나 특정한 장소를 방문할 수 없다. 원하는 일을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등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소비하지 못한다. 징역형으로 제한된 시간 주권은 돈으로 사거나 타인의 시간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이 점 때문에 징역형은 벌금형과 달리 재벌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시간은 수명이 허락하는 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남녀노소, 부자나 빈자 누구에게나 1주는 168시간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소비하며 ‘나’라는 실존을 만들어간다. 즉, ‘나 다운 삶’이란 내 시간을 얼마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쓰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다운 삶에 시간을 쏟을수록 민주주의의 토대인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러나 모든 시간을 이런 데 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목구멍에도 시간을 안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과 ‘내 목구멍’을 위한 시간으로 대별된다. 목구멍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할수록 나 다운 삶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노동법의 역사를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고도 한다. 신분제하의 노예노동은 근로시간의 한도가 존재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이후 노동은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계약관계 노동으로 전환해 인간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목구멍에 투입될 수 있는 근로시간의 법정 한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노동자가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 확대돼 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노동법의 역사는 기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이 확대되는 역사였던 것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래 68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제가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시행됐다. 사용자는 이제 노동자에게 1인당 주 168시간 중 최대 52시간까지만 일을 시킬 수 있다. 이를 두고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주 52시간제는 단순히 우리나라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했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사회적으로도 성숙해 민주주의를 꽃피웠고, 정치·문화·경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고, 개인의 만족과 개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근로시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노동자의 나 다운 삶과 자존감의 문제다. 결국 주 52시간 근로시간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자 성숙한 민주주의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인 것이다. 지금은 나 다운 삶을 위한 시간 사용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김린 (인하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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