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장식 (29) 케냐서 15년 사역 마치고 안식처 ‘광명의 집’으로 귀국

아프리카의 단순한 외래 선교사 아닌
공동체 일원이 되기를 소망하며 사역
뒤이을 선교사 없어 계속 귀국 미루다…

이장식 교수 아내 박동근 사모가 케냐 키무리던 유치원 원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유치원 원아가 늘면서 아내는 유치원 독립 건물을 지을 필요를 느꼈다. 약 4만5000달러의 비용을 들여 유치원 교사를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지었다. 석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한국식 유치원이었다.

유치원 건물 정초석에는 아내가 이 유치원을 설립하고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유치원 이름은 지역 이름인 키무리(Kimuri)에 ‘Dawn(새벽)’을 붙였는데, 이는 아내의 이름에 들어가는 동녘 동(東)과 뜻이 통한다.

나와 아내는 아프리카 땅에서 단순한 외래 선교사가 아니라 이곳 공동체의 일원이 되길 소망했다. 다행히 이웃들은 우리의 모습을 좋게 봐줬다. 유치원 어린이들은 우릴 보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인사했고, 이들의 부모도 밝은 미소로 우릴 대했다. 이렇게 나와 아내는 케냐에서 15년간 사역했다. 유치원뿐 아니라 교회당도 한국교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곳에 세웠다.

케냐에서의 사역이 10년 이상 되자 나이도 있고 귀국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쉽게 돌아갈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릴 이어 선교사로 올 기장 교단 선교사가 없었다. 기장 총회가 공개적으로 초청 공고까지 냈고 몇몇 뜻있다는 분이 와서 보고도 갔지만 최종 결정 단계에서 결렬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편으론 우리가 아주 귀국했을 때 있을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을 기다리다 한국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박찬섭 목사님 내외가 PCEA와 본격적 협력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또한 기쁜 소식은 경기도 화성시에 세워진 광명의 집 입주 허락이 난 것이었다.

2004년 11월 27일 나는 PCEA 신학대 졸업식에 참석해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모두 아쉬워했다. 그리고 12월 6일 교수회에 우리의 귀국 계획을 밝혔다. 동료들 역시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듬해 우리는 오랜 타지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리고 우리의, 땅에서의 마지막 안식처 광명의 집으로 향했다. 광명의 집은 은퇴한 노목사들을 위한 집이었다. 농천교회 나광덕 장로와 김명희 집사 부부가 거액의 사재를 들여 지은 집으로 주변에 나지막한 푸른 산들이 둘러져 있고 옆에는 큰 호수가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게다가 점심과 저녁은 광명의 집 모든 가족들이 함께 공동 식사를 하고 아침식사만 각 부부가 해결한다고 하니 은퇴 후 사실상 준비된 집도, 아무런 수입도 없을 우리에겐 완벽하게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곳이었다.

여기 와보니 80대 은퇴 목사 3가정, 70대 3가정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평생을 교회를 위해 몸 바쳐 일하던 은퇴 목사들과 공동생활을 하게 됐으니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좋은 수양생활이 될 거 같았다. 남은 생 동안 자녀들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염려 끼치지 않고 잘 지내다 하나님 앞으로 편히 갈 수 있게 기도했던 우리의 기도가 이뤄진 것이다. 우리는 202호를 배정받았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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