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선교적 교회

마태복음 25장 31~46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상이 멈췄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도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며 뉴노멀, 새로운 일상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교회도 여러 가지가 변할 것입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에서 지역사회 중심, 세상으로 스며드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까지 모이는 교회를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흩어지는 교회를 강조할 때가 됐습니다. 사실 교회는 세상에 흩어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 문구는 무엇일까요. 40절입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새번역 성경에서는 ‘작은 자’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극히 작은 자,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로 밝히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예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합니다. 평생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으시며 살다가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보잘것없다 못해 죄인으로 죽으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이로 살았기에 그런 사람들을 이해했고 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의 의인들이 자신들의 선행을 기억하지 못한 것은 그들 자신 역시 지극히 작은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같이 아파하는 것이 일상이고 삶이니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잘난 사람이 어쩌다 선행을 했으면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보살핀 것은 특별히 기억할 일도 아닌 생존을 위한 상부상조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작은 자의 선교라야 합니다. 나의 강점이 아닌 약점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없어도 있는 척, 못나도 잘난 척, 학벌을 내세우고 집안을 내세웁니다. 그런데 선교는 약자의 모습, 보잘것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해야 합니다. 두 손 가득 뭔가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손을 맞잡을 수 있고 껴안을 수 있습니다.

선교하는 자세는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동정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 이상으로 우리의 보잘것없는 이웃들을 주님 대하듯 존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살다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병을 고치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예수의 모습에 열광하지만, 사실은 연약하고 비루한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왜일까요.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고 그들과 연대하며 보듬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부족한 점, 약점, 보잘것없는 점, 그것이 주 안에서 힘입니다. 교회는 이를 통해 세상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교회나 대형교회를 흉내 내지 않고, 작으면 작은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그것을 오히려 강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작은교회는 큰 교회의 축소판이 아닙니다.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된 시대에 오히려 작은교회가 세대 간 소통을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싸매줄 수 있습니다.

생각을 달리하고 관점을 바꾸면 위기는 늘 기회가 됩니다. 모두 부와 권세로 세상을 바꾸려 할 때, 예수님은 지극히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선교는 강자가 아닌 약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작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와 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명성 목사 (미국장로교 한국 파송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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