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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의 티 테이블] 고독의 근육 키우기


은퇴한 고령자들의 고민 중 하나가 ‘혼자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사는 이들은 경제적 문제와 별개로 80세 이후 삶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이들은 대부분 재미있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보통 60세 전후에 정년퇴직 한다면 50대는 서서히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50대에 접어들어 가사나 자녀 양육의 부담을 벗는 전업주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 시간 관리, 자산 관리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마음 준비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인생의 어느 시기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있다. 항상 누군가와 같이 지내야 하는 의존적인 생활 습관을 갖고 있다면 길고 긴 노후가 힘겨울 것이다.

외로움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 ‘사회적 외로움’이다.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 연대감, 친밀감을 주는 친구나 지인이 폭넓게 존재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두 번째는 ‘정서적 외로움’이다. 의지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사회적 외로움은 독신보다 오히려 가정을 꾸렸던 기혼자들에게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에서 독신과 사회 정책을 연구하는 엘리야킴 키슬레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오랫동안 가족만 보고 산 사람들은 노년기에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반면 정서적 유대가 강력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온 싱글들은 상대적으로 노년기에 사회적 외로움을 덜 느낀다고 한다. 외로움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결혼 여부와 같은 객관적인 상황보다 자기 인식에 달려 있기에 결혼해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로움은 고독과 다르다. 외로움은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고, 고독은 자기 자신을 위해 저축하는 시간이다. 즉 외로운 사람은 한밤중에 친구를 불러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고독한 사람은 홀로 낯선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한다. ‘내가 나와 교제하는 실존적 상태’를 고독이라고 한다면, 고독과 마찬가지로 홀로 있으나 ‘인간 집단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도 버림받는 상태’를 외로움이라고 말했다. 외로움이란 달리 표현하면 나 혼자이며 동료가 없는 상태다.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고독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가 잠을 자면서 하루 동안의 일들을 뇌가 정리하듯이, 너무나 많은 관계에서 가끔은 한 걸음 물러나 그 관계들이 나에게 새겨 놓은 흔적들을 바라봐야 한다. 폴 틸리히의 말처럼 홀로 있음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외로움’이라는 말을 만들었으며, 그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닐까. 또 고독은 나를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외로운 누군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고독은 내 속의 아픈 누군가(자아)의 소리를 듣는 일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혼자 사는 힘’을 기를 수 있을까?”란 질문은 “어떻게 하면 고독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을까?”란 질문과 같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은퇴 문제 전문가인 호사카 다카시는 혼자 지내는 힘이야말로 은퇴 후 충실한 노후를 지켜주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고독력’이라 부른다. 50대가 되면 고독력을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는 저서 ‘50, 이제 나를 위해 산다’에서 50세 무렵부터 가치관을 바꿔야 즐거운 노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고집했던 인생관과 가치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 할 것을 권한다.

자아 성찰이 고독의 근육을 키워준다. 먼저 일상의 모든 일을 내려놓고 하루 30분 정도는 침묵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낯선 카페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거나 나 홀로 여행을 떠나본다. 여행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히 자신의 인생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게 된다. 또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라고 첫머리를 시작하는 일기 쓰기, 일주일 단위로 정기적인 일정 계획하기,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며 쓸데없는 물건 버리기 등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하고 간단한 일부터 실천해 보자.

부부가 함께 살더라도 혼자 사는 힘이 있어야 둘이 사는 삶을 잘 이어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외로움이 고독으로 바뀌고, 고독은 우리에게 한 차원 다른 것을 선물로 줄 것이다. 결국엔 하나님 앞에 홀로 선 ‘자기(self)’가 되는 과업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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