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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섬의 무늬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섬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였다. 섬 활동가의 사진전을 기획할 수 있겠냐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던 6개월 전, 나는 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저 먼바다 위에 떠 있는 것들이 섬이었지, 정도의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제주도나 강화도에 놀러 간 적은 있지만 배를 타지 않아서인지 그곳들은 섬이라기보다 바다와 관광지로 느껴졌다. 섬은 어떤 곳일까, 섬 활동가는 어떤 일을 할까, 호기심에 이끌려 우선 미팅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난 20년 동안 400여개의 섬을 답사했다. 우리나라에 섬이 400개나 되냐고 했더니 그보다 훨씬 많단다. 그는 섬을 걷다가 발견한 것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책도 여러 권 냈고 사진전도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섬 연구도 하고, 섬 학교도 열고, 때로는 섬을 지키기 위한 운동도 한다. 섬은 무수한 자원의 보고이자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활동과 섬의 모습들이 궁금해졌다.

집에 돌아와 섬과 관련된 검색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는 섬 여행을 다녀왔다는 글과 사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육지로 오가는 다리가 놓여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는 섬도 많아졌고, 섬 전체가 온통 보라색인 퍼플섬 등 신선한 섬 브랜딩도 눈에 띄었다. 여행자의 관점에서 보는 섬의 모습과는 또 다른 섬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됐다. 섬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섬의 자원을 발굴 및 보존하고, 관광지로서 섬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홍보들도 진행되고 있었다. 2019년에는 8월 8일이 섬의 날로 지정됐다고 한다.

전남 보성 장도의 갯벌에서 널배를 타며 꼬막을 캐는 아주머니들의 다큐멘터리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서울 사람들이 승용차를 아끼듯이, 나는 이것을 아껴요.” “40년을 함께 했어요. 참말로 귀한 밥그릇이죠.” 널배는 좁고 긴 나무판인데 스키처럼 앞쪽이 위로 말려 올라가 있다. 갯벌에서 엎드려 타는 스키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들은 일흔이 넘어서도 널배에 꼬막 캘 도구를 싣고 한 발로 널배를 움직이며 갯벌을 누빈다. 움직인 만큼 돈을 벌어 자식들을 육지로 보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가보지 못한 여러 섬을 사진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섬은 흥미로운 신세계였다. 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찍어둔 다양한 사진 중에 42점을 골랐다. 바위를 삼킬 듯 격정적인 파도와 신비로운 물안개 사진은 마음을 바다로 나서게 했다. 환경오염 문제로 점차 친환경 소재로 대체되고 있지만 오랜 시간 섬과 바다의 무늬로 존재했던 플라스틱 부표들의 사진은 청량하고 아름답다. 해남 어불도의 전복 양식장은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모아 놓은 현대미술 작품처럼 보이고, 노을 속의 김 양식장은 꿈의 세계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할 다리처럼 환상적이다.

갯벌에서는 어김없이 밥벌이를 위한 일상의 노동이 행해지고, 새벽의 어둠을 뚫고 출항하는 고기잡이배의 뒷모습도 숭고하다. 모래사장을 달리는 농게떼는 바다 유기물을 걸러 먹으며 성장한 다음 철새의 먹이가 되는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한다. 단단한 성곽처럼 보이지만 다가가면 돌 사이 구멍이 많은 여수 추도의 돌담길을 통해서는 돌담이 바람을 차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지날 수 있는 통로가 됨을 배운다. 풀 뜯는 귀여운 염소도, 활기찬 닭도 섬의 풍경이고 무늬다.

몇 개월의 준비를 거쳐 ‘섬의 무늬’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오픈했지만 하필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져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긴 어렵게 됐다. 하지만 섬을 사랑하는 분들, 섬이라는 단어에 발걸음을 멈춘 분들이 오셔서 사진들에 공감하고 섬에 대한 추억들을 공유한다. 섬의 가치와 아름다움, 섬의 생생한 모습들을 알리기 위한 작가의 글쓰기와 사진 찍기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전시회를 마치면 사진으로만 보던 섬의 무늬들을 직접 확인하러 가야겠다. 섬이 많은 사람에게 숨과 쉼이 되기를.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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