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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역대 처음의 두 모습

심희정 온라인뉴스부 기자


‘역대 처음’은 무언가를 강조할 때 쓰기 편리한 말이다. 역대가 얼만큼인지 수를 세보며 이렇게나 드물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는 말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이 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주 부정적으로 쓰여 왔다. 역대 처음이 자주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거북하게 쌓여 왔다.

그러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역대 처음의 소식을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취소됐다가 2년 만에 돌아온 윔블던 테니스 경기가 준준결승과 준결승, 결승전에서 관중 100%를 허용했다는 이야기였다. 팬데믹 이후 영국에서 열린 스포츠 경기 중 처음으로 허가된 것이라고 한다. 빽빽이 찬 관중석과 마스크 없이 환하게 웃는 이들의 모습은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주 오래전이거나 아주 먼 미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코트 바깥에서는 꽤 엄격한 규제들이 있었다. 관중들은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확인증이나 음성 결과 증명서를 지참해야 했고, 이동할 땐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했다. 코트장 내 볼보이와 볼걸들은 선수에게 땀을 닦을 수건이나 음료를 건네는 것이 금지됐다. 모든 선수와 코치진 등 일행은 한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고, 정기적으로 코로나19 검사와 추적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많은 금지와 협조가 한데 어우러진 윔블던 경기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마침내는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노박 조코비치가 잔디를 씹으며 자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대 처음의 들뜬 기분이 가시기도 전에, 왜 섣불리 마음을 부풀게 놔두었냐고 책망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정적 기운을 잔뜩 품은 역대 처음이 한국 프로야구에 들이닥쳤다. 1982년 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경기가 중단된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무관중 경기를 발표한 지 사흘 만이었다. 관중 50% 확대를 논의하다가 급작스러운 상황 악화로 무관중이 된 데 이어 경기 자체가 취소되자 야구팬들은 크게 아쉬워했다.

경기 중단은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 소속 1군 선수 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데서 비롯됐다. 7월 들어 연일 확진자 1000명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선수단이 먹구름을 피해 가긴 어려웠을 테지, 하며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5일 NC의 원정 숙소에서 박석민 이명기 권희동 박민우 등 4명의 선수가 방역 지침을 어겨 외부인 2명과 술을 마셨고, 이 중 박민우를 제외한 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놀랄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날 밤에도 한화 이글스,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이 각각 NC 선수들과 술을 마신 외부인과 한화의 서울 원정 숙소에서 모임을 했다는 소식이 추가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이들 모두가 잠시 같은 공간에 머무르기도 했던 것으로 역학 조사 결과 확인됐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당시는 수도권 무관중 경기 전환이 논의되던 때였다.

프로야구가 정원의 10%, 30%, 50%일 때 팬들은 꼼꼼히 마스크를 쓰고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경기장을 찾았다. 수도권 관중이 시즌 초반 10%에서 30%로 늘자 한 해설자는 “이렇게 자리를 채운 관중을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야구장은 붐벼야 한다. 얼른 경기장이 꽉 차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느 누구도 아닌 선수단이 리그 중단에 책임이 있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그냥 넘어가서도 안 될 일이다. 한화와 키움 구단은 해당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징계를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4명의 NC 선수들은 72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1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구단은 1억원을 물게 됐다. 이는 KBO 역대 제재금 중 최고액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겪고 싶지 않았던 역대 처음을 경험하게 한 책임은 징계로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파장은 오래갈 것이고, 선수들은 그보다 더 오래 잘못을 안고 가야 한다.

심희정 온라인뉴스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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