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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아무래도 ‘자유주의’에 대해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최근 이 주제에 대해 그동안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 온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의 견해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필자가 보기에 최 교수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20세기 중반에 확립된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인 것 같다. 최 교수는 현 정부가 이 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필자 생각에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자유주의는 근대 초 유럽에서 정치적 자유화와 함께 중상주의하에서 규제와 과세를 부당하다고 느낀 시민들이 시장경제를 주창한 데서 출발했다. 그것을 요약한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서 국부 증가, 즉 경제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시장경제는 빠른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경기변동으로 민중의 삶은 불안정해지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 오염 등으로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괴리하는 문제도 나타났다.

그런 문제를 보면서 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자유의 개념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범하는 것을 막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에 상품이 넘쳐나는데도 소득이 없어서 사지 못하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불구가 되고, 교육을 못 받아 읽지 못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는 인식 위에서 ‘국가에 의한 자유’도 추가한 것이다

그렇게 정립된 ‘사회적 자유주의’를 극적으로 실현한 것이 미국의 뉴딜정책이다.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불안정 사태를 맞아 경기부양정책뿐 아니라 불안정을 줄이는 규제를 도입했다. 노동운동을 체제 내에 정착시키고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그것을 계기로 사회적 자유주의는 전 세계적 주류사상이 됐다.

뉴딜정책은 그 후 30여년간 고도성장과 평등이 결합된 ‘자본주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규제에 따른 불편 등으로 ‘신자유주의’가 대두했다. 신자유주의는 뉴딜정책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한 결과 과거 시장경제의 실패를 반복했다. 누적된 불안정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지고, 불평등은 대공황 이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의 괴리는 기후 변화 문제를 낳았다.

한국은 어떤가. 오랜 관료사회의 유산에다 1960~70년대 ‘신중상주의’를 거쳐 1980년대부터 자유화가 진행됐다. 이때의 자유화는 근대 초 구미의 자유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한편 노동조합이 자유화되고 복지제도가 정착돼서 시장경제의 수정도 이뤄졌다. 그렇게 한국은 구미 선진국의 자유주의가 18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걸어왔던 길을 1980년대 이후 압축적으로 걸었던 것이다. 그 과정은 1997년 외환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대거 도입되고 그 후에도 뒷걸음질친 적이 있지만 대체로 기조는 유지됐다.

한국은 여전히 자유주의적 개혁 과제를 안고 있다. 오랜 관료사회와 신중상주의의 유산은 정경유착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정경유착의 구도는 과거와 다르다. 권력이 재력과 결탁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자유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행정과 정치권력의 영향은 줄어든 반면, 법사 권력의 영향이 커졌다. 그런 권력을 견제하고 쪼개는 것은 자유주의적 개혁과제다.

재벌이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하도급계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규제하는 것도 자유주의적 개혁이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것도 그렇다. 부동산 투기는 19세기부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부정적으로 본 ‘지대추구행위’다. 그런 한편 경기변동에 따른 불안정을 제거하기 위한 거시경제정책과 금융규제, 불평등 교정을 위한 복지 및 교육기회 확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녹색정책 등 시장경제를 수정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현 정부는 방법은 서툴렀지만 그런 개혁을 하겠다는 방향만큼은 어느 정부보다 분명했고 성과도 있었다. 다른 쪽은 정경유착 고리를 못 끊는 반자유주의나 시장경제의 문제를 간과하는 신자유주의다. 현 정부는 그런 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서투른 방법에 시선이 고정되어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 분들 중에 최장집 교수 같은 분이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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