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춤 바닥부터 배워 인정…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세은 인터뷰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이 된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뒤 잠시 마스크를 벗고 포즈를 취했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지난 10년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춤을 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게 ‘에투알’(etoile·수석무용수)의 의미는 간절함과 인내심입니다.”

동양인 최초로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에 올라 금의환향한 박세은이 19일 밝힌 소회다. 그는 이날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10년간의 성장과 노력을 인정받아 기쁘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서울시와 강남구의 허가를 받아 대면으로 진행됐다. 지난 15일 귀국한 박세은은 코로나19 백신을 현지에서 접종하고 PCR검사에서도 음성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가 면제됐다.

박세은은 지난달 10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개막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막공연 직후 에투알로 지명됐다. 1669년 설립된 파리오페라발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상의 발레단이다. 150여명의 정단원은 5단계로 구분되는데, 카드리유(군무)-코리페(군무 리더)-쉬제(솔리스트)-프리미에 당쇠즈(제1무용수)-에투알(수석무용수) 순이다. 주역급인 프리미에까지는 승급 시험을 통해 선발되지만 에투알은 예술감독과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지명된다. 엄격한 심사제도에 따른 서열주의와 파리오페라발레학교를 졸업한 프랑스 출신 무용수 중심의 순혈주의로 유명한 파리오페라발레에서 박세은은 2011년 준단원 입단 이후 10년 만에 ‘별’이 됐다.

박세은은 “프랑스에서는 아시아 출신 첫 에투알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라면서도 “시대가 바뀌면서 파리오페라발레도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불가능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에투알은 실력만이 아니라 예술감독이 누구인지 등 타이밍도 중요한데,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에투알 승급으로 달라진 게 많다. 발레단에서 에투알에게만 제공하는 개인 탈의실과 전담 어시스턴트(도우미)가 생겼다. 오렐리 뒤퐁 예술감독과 면담에서 다음 시즌 레퍼토리와 관련해 희망하는 작품, 파트너, 안무가 등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그는 “에투알 승급 이후 한 달이 좀 지났는데, 솔직히 고조된 감정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며 “아무래도 2021~2022시즌을 시작하는 ‘데피레’에 왕관을 쓰고 나가면 실감이 조금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한결 기자

‘데피레’(Defile du ballet)는 파리오페라발레가 시즌 개막을 알리는 공연이다. 단원 150여명과 파리오페라발레학교 학생 130여명이 전원 행진하는 독특한 공연으로 여성 에투알은 왕관을 쓴다. 박세은은 오는 9월 24일 데피레에 이어 새로운 에투알을 소개하는 성격의 갈라 공연에도 출연한다.

준단원으로 입단해 에투알이 되기까지 박세은이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입단 직후 언어 문제를 겪었고 몸에 밴 러시아 바가노바 스타일을 파리오페라발레 스타일로 바꿔야했다. 그는 “입단 직후 제게는 감정표현이 없고 기술만 뛰어나다는 평가와 프랑스인들을 제치고 큰 무용수가 될 거라는 평가가 공존했다”며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가노바 스타일로 배웠기 때문에 동작과 스텝 등 바닥부터 프랑스 스타일로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가 자국 발레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보니 테크닉이 뛰어난 것을 흠으로 보기도 했지만 결국 제 노력을 인정해 줬다”고 전했다.

박세은의 겸손과 달리 그는 에투알이 되기 전부터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쉬제 시절에는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캐스팅됐고 발레단 대표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가서 ‘라바야데르’에 출연했다. 프리미에 시절에도 에투알만큼 비중 있는 역할로 자주 캐스팅됐고 2018년 발레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다.

그는 “발레단에서 쉬제 시절부터 주역으로 설 기회를 줬지만 저는 스스로의 춤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춤을 췄다”면서 “제 춤에 대한 의심이 없어진 것은 프리미에가 됐을 때부터다. 그때부터 마음껏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더 많은 분이 좋아해 줬다”고 말했다.

발레단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지만 박세은에게 만족은 없다. 아직 추고 싶은 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롤모델로 삼은 후배들을 향해 “요즘 후배들은 실력 면에서 다들 뛰어나다. 다만 예술은 자기와 싸움인 만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국에서 박세은의 무대는 이르면 내년 여름쯤 볼 수 있다. 박세은의 한국 소속사인 에투알클래식은 “박세은을 중심으로 파리오페라발레 갈라 공연을 제작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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