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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다수는 항상 옳지 않다’

최여정 문화평론가


오랫동안 낙후됐던 우리 마을을 살릴 온천 개발이 이제 막바지다. 새로운 관광지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고, 지역 경제에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될 거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들떠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긴다. 온천수가 오염이 됐으니 개발을 멈추라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자, 과연 마을 사람들인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오염된 온천수로 관광객들에게 치명적인 병이 생길 수 있으니 당장 큰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공사를 원점으로 되돌릴 것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를 쫓아내고 다수의 바람대로 온천 개장을 할 것인가.

여기 대중을 소재로 한 두 편의 흥미로운 희곡이 있다.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과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민중의 적’은 19세기 말 노르웨이 작은 마을의 온천 개발을 두고 수질 오염을 밝히려는 스톡만 박사와 이를 막으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중의 적이라는 저 위협적인 말을 보면 피지배계층을 억압하는 지배자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입센은 다수의 신념에 반대하는 소수는 그들에게 적이 될 수 있으며, 민주주의 신념이 과연 언제나 옳은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는 진실 여부와도 깊게 연관돼 있다. 다수가 찬성하면 진실이고, 소수 의견은 진실이 아닌가. 입센은 과격하게도 ‘다수는 항상 옳지 않다’라고 ‘민중의 적’을 통해 말한다.

민중의 적은 또 있다. 바로 코리올라누스다. 그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50명의 영웅 중 하나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애독자였던 셰익스피어는 그의 마지막 비극 ‘코리올라누스’에서 기원전 5세기의 전설적인 장군 가이우스 마르키우스와 로마 시민들의 대립 과정을 그린다. 일견 기원전 5세기 로마와 19세기 노르웨이라는 그 시대만큼이나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두 작품 모두를 관통하는 질문이 있다. ‘다수는 항상 옳은가?’

2014년 영국 바비칸 센터에서 관람한 ‘민중의 적’은 꽤 인상적이었다. 유럽 연극계의 슈퍼스타라는 별명처럼 파격적인 연출로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은 관객을 온천 개발의 이권 다툼 중심에 있는 마을 사람들로서 극에 참여시킨다. 민주주의 참여정치를 그대로 극에 대입시킨 이 놀라운 연출력은 바비칸 센터 극장을 온천 개발의 난상 토론장으로 만들고, 관객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첨예한 찬반 논쟁을 벌인다. 당신이라면, 어느 편에 서겠는가. 물론 희곡에는 입센이 생각한 결말이 있다. 인간은 군중 속에서 평등함을 이루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합할 수 있지만, 입센의 말대로라면 다수로 대변되는 민중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그 목표나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가치 판단 앞에서 우리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LG아트센터 마지막 기획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양정웅 연출의 ‘코리올라누스’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보통 ‘코리올라누스’를 볼 때, 로마 시민에게 추방당하는 그의 성격적 결함과 어머니의 설득으로 결국 로마 침공을 포기하고 적진에서 죽음을 맞는 마마보이 콤플렉스를 조명하지만 내게 흥미로운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 코리올라누스를 추방한 로마 시민이다. 그들은 그를 사랑했다가 버렸다. 그의 용맹함과 청빈함을 일제히 칭송하며 집정관으로 추대했다가 오만하다며 하루아침에 표를 거둬들인다. 그에 대한 호의적인 소수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많은 이는 셰익스피어 극 중 가장 매력 없는 인물로 코리올라누스를 꼽지만 영웅의 면모와 인간적인 약점을 낱낱이 드러내는 이처럼 흥미로운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로마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로마 시민의 적이 된 영웅.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엇갈리기 마련이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일제히 같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칭송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거나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평판을 경계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다수의 의견은 더욱 위험하다. 민중 스스로가 사회의 적이 될 수 있으니.

최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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