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 9개월… ‘협상가’ 文의 마지막 제안은?

“임기말 북핵 성과낼 의욕보다는
차기 정부 위한 외교환경 조성을…
내달 한·미 연합훈련이 분수령”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을 표지에 배치하며 ‘협상가(the negotiator)’라는 제목을 달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다룰 수 있는 한국의 지도자라는 뜻이었다.

문 대통령은 4년 만인 올 7월 타임 아시아판 표지 모델로 다시 나섰다. 표지에는 ‘마지막 제안(Final offer)’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미국과 북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북핵 협상을 주도했던 문 대통령은 임기를 불과 9개월여 남긴 시점에서 북한을 다시 비핵화 테이블로 이끌어낼 마지막 제안을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북핵과 관련한 기록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정상 만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 중국과 일본 등 북핵 관련 주변국도 차기 정권과 외교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향후 각국과의 관계 회복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외교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중립 외교 방식인 ‘광해군식 외교’ 전략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23일 “국익이라는 큰 원칙하에 사안별로 협력 국가를 나눠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물꼬를 텄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현재 올스톱 상태다.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도 남·북·미 간 지속적인 대화를 담보하지 못했다. 제재 완화와 핵 폐기의 우선순위를 두고 북·미가 대립하는 사이 ‘톱다운’ 방식의 외교를 선호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났다. 미국과 중국은 안보·신산업 분야에서 대립하며 한국의 선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중단을 한국과 미국 탓으로 돌리며 우리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반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기간 방일이 무산되면서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로 인한 한·일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지난 4년여간 문 대통령의 노력에도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는 아직 요원한 셈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임기 내내 다져온 한·미동맹을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 대통령은 자국 여론 해소를 위해 북핵 해법을 강조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북·미 대화를 이끌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미 관계는 연착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 마련 과정에 우리 정부의 의견을 반영했고, 한국군에게 얀센 백신을 지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문재인정부는 한·미동맹 복원 노력을 잘 해오고 있다”며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이 양국의 혈맹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다만 대북제재 유지를 고수하는 미국을 설득할 유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 성격이 강한 쿼드 가입을 압박해 올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미국 측으로부터 쿼드 가입 요청이 들어온 것은 없다. 양국 관계 개선과 대북제재 완화 설득 방안에 대해서는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미국과 가까워질수록 중국과는 멀어졌다. 사드(THAAD) 배치로 불거진 한·중 갈등은 2017년 12월 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것을 계기로 한층 해소됐다. 다만 중국이 한한령 해제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양국 관계 회복 속도가 늦어졌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발표문에 대만해협과 쿼드, 남중국해 등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핵심 문구 3개가 포함되면서 중국의 반발이 더 커졌다. 문 대통령의 방중 이후 한 번도 한국을 찾지 않은 시 주석의 방한 추진도 시급한 과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참석할 경우 주요 국가들과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새로운 협의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악으로 치달은 일본과의 관계 회복도 과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일 정부가 과거사 해법을 포함한 통 큰 결단을 하려면 양국 여론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다만 양국 모두 선거를 앞두고 있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문 대통령 임기 내 다자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는 있지만 양국이 따로 준비하는 것과는 느낌 자체가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문 대통령 임기 말 남북 관계를 결정 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교수는 “북한이 8월에 비판 담화뿐 아니라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군사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가 미국과 일본, 중국 등 관계국과 함께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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