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하나님과 나 사이 ‘죄악의 심연’ 쉼 없는 회개로 건너라

세상 지식·육욕을 벗고
구원 향한 길을 밝힌 ‘아우구스티누스’

게티이미지뱅크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인 교부이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아래 사진)는 유럽 사상의 두 물줄기인 헬레니즘(그리스·로마 문명)과 헤브라이즘(유다·그리스도교)을 하나로 합류시킨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 20여년을 헤맨 끝에 결국 하나님에게서 답을 구했다. 하나님이야말로 그토록 찾길 원했던 진리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 북부, 지금의 알제리 동부 타가스테에서 로마의 하급관리인 아버지 파트리키우스와 기독교인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 태어났다. 당시 로마인 평균 수명은 25세였다. 그는 76년 동안 장수하면서 인간 존재와 자아 문제에 천착했다. ‘고백록’(Confessiones)은 그의 100권이 넘는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다.

두 겹의 ‘고백’


인생의 깊은 협곡을 헤맬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 삶의 의미를 찾았거나 회심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고백록’은 그리스도를 향한 정신적 여정과 신앙의 고백이 세밀하게 담긴 영적 자서전이다. 10대 소년으로 남의 집 배나무의 배를 훔쳐 돼지에게 던지며 좋아했던 일부터 육욕에 얽매여 살던 청년 시절의 방탕한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또 마니교, 신플라톤주의 등을 추구하다 극적으로 회심하기까지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감사했다. ‘고백록’은 자전적 기록 10권과 성서에 대한 해석 3권 총 13권으로 구성됐다. 그가 아프리카 히포의 주교로 있었던 400년에 완성한 책이다.

‘고백록’은 연약한 죄의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변함없고 전능하신 은혜를 찬송한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억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문장 하나하나가 기도문이다. “내 영혼의 집은 주님이 들어오시기에는 너무 좁사오니 넓혀 주시고, 폐허로 변해 황폐해져 있사오니 회복시켜 주십시오. 또한 거기에는 주님의 눈에 거슬릴 것이 뻔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고, 또한 고백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아니시면 누가 그것을 깨끗이 치워주겠습니까.”(고백록 1권 5장 6절)

그는 소년 시절의 죄 된 생활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가 사랑하고 추구한 것은 죄악 자체였고 잘못 자체였고 부끄러움 자체였습니다.” 이어서 배를 도둑질한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으며, 우정을 빙자해 공범을 저지르고 공부조차도 사실은 자기 자랑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죄를 범하는 까닭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의욕과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한 데 있다고 봤다.(고백록 2권 4장 9절)

또 육체의 정욕에 얽매여 있던 31살 때의 모습은 “내 병든 영혼은 정욕의 노예가 돼 더욱더 곪아가기만 했습니다”라고 기록했다.(고백록 4권 15장 25절) 그는 세례를 받기 전 성적 유혹에서 경박한 유희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빠져들었던 모든 악덕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탄식했다. “내가 얼마나 추악한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뒤틀려 있고 더러우며, 얼마나 많은 흠집과 종기로 뒤덮여 있는지를 보지 않을 수 없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역겹고 끔찍했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고백록 8권 7장 16절)

그는 ‘선과 악의 문제’로 고민했다. 마니교가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그를 괴롭혀 오던 악의 문제에 대해서 괜찮은 답변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니교는 선과 악 모두 존재하는 실체이고, 인간 역시 선하고 악한 의지를 갖고 태어난다는 선과 악의 이원론을 교설로 제시했다. 이 답변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자신의 악행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 “죄를 짓는 것은 저희 자신이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저희 안에 있는 다른 본성이 죄를 짓는 것으로 보였고”(고백록 5권 10장 18절)라고 했다. 그는 악이란 실체가 아니라 단지 선의 결핍이란 결론을 통해 그리스도교로의 회심을 결심했다. 고뇌의 여정을 통해 악은 신앙의 결단에 있을 때 해결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결정한 후에도 세례라는 최종 단계를 미뤘다. 그때까지 영위해오던 쾌락 추구적 생활 방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인간 의지의 무능함을 강하게 묘사했다. “새로운 의지는 옛 의지를 정복할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옛 의지는 너무 오랜 방종으로 너무 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속에 두 의지 즉 옛 의지와 새 의지 육체적인 의지와 영적인 의지가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싸움으로 내 영혼은 찢어지고 있었습니다.”(고백록 8권 5장 10절)

무화과나무 아래서


8월 어느 날, 내적인 갈등으로 무화과나무 밑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 이웃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집어라 읽어라.”(고백록 8권 12장 29절)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서를 들고 시선이 가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그는 “순간적으로 마치 평정의 빛이 내 마음에 부어지듯 의혹의 모든 어둠이 흩어져 버렸다”고 했다. 회심의 순간이었다. 그는 386년 여름, 부활주일 날에 성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가 고백록을 13권까지 쓴 이유는 개종과 회심의 체험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회심 후에도 여전히 갈등과 어둠에 싸인 불완전한 존재로 자신을 묘사한다. “오 주님이시여. 내 속에 있는 것을 어찌 당신에게 숨길 수 있나이까.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하므로 아직껏 탄식하고 있나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나 자신을 거부하고 당신을 택하옵니다.”(고백록 10권 2장 2절)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그분이 아직 모르는 사실을 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죄를 고백할 때까지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죄를 고백하고 나면, 그 심연엔 아름다운 다리가 놓이고 우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죄 고백 후 자신의 인격적인 통합과 내적인 평화가 이루어졌음을 서사적으로 간증하는 ‘고백록’을 읽어야 할 이유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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