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실패로 전세가·지방 집값 또 뛰는데… 정부는 자화자찬만

[스토리텔링 경제]
당국, 시장 거스르는 정책만 고집
수도권 외지인 거래·10대 갭 투자↑


정부의 전방위적 부동산 세제 강화 등으로 한동안 잠잠한 듯했던 부동산 투기 수요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부터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 보유, 양도 전 과정에 과세를 강화하면서 투기 수요가 감소했다는 관측이 일었지만 올 들어 정작 서울 등 수도권에 외지인 거래와 ‘갭 투자(매매가와 전셋값 차이가 적은 주택을 세를 끼고 매수하는 것)’ 등 투기로 추정되는 거래가 오히려 증가했다.

임대차법 개정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인 정책의 후폭풍으로 전셋값과 지방 집값이 급등한 것이 투기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임대차법 개정 이후 전월세 계약 갱신율이 높아졌다는 점을 들어 임차인의 주거 안정이 개선됐다는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 빌라 등 집합건물 매수자 가운데 서울 거주자 비율은 74.7%로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상반기(79.5%)보다 4.8% 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경기도·인천과 그 외 지방 거주자의 서울 집합건물 매수자 비율은 각각 15.9%와 9.4%로 4년 전보다 오히려 늘었다. 외지인의 서울 아파트 투기 수요가 오히려 늘었다는 방증이다.


정상적 거래라 할 수 없는 10대의 갭 투자는 올 들어 폭증 수준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과 수도권에서 10대의 갭 투자는 총 203건으로, 불과 8건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배 늘었다. 소득이 거의 없는 10대의 갭 투자는 대부분 부모에게 자금을 증여받거나 부모가 자녀 명의를 빌려 산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부동산 투기 현상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갭 투자 증가는 정부가 주장하는 ‘집값 고점론(論)’과 ‘금리 인상 위기론’ 등이 시장에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임대차법 개정 이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매매가와 전셋값의 격차가 줄어든 것도 갭 투자가 늘어난 배경으로 꼽힌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개정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 이후 지난달까지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전셋값은 각각 16.69%, 15.38%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임대차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8월 53.3%였지만, 다섯 달 뒤인 올해 1월에는 56.3%까지 치솟았다.

외지인의 서울 집합건물 매수 증가 이면에는 임대차 시장 불안 등에 따라 지방 집값이 급등한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세종(43.82%), 충남 계룡(18.38%), 경북 포항(15.31%) 등 비수도권에서도 두 자릿수 비율로 아파트 가격이 뛴 곳이 속출했다. 가격이 오른 지방 아파트를 팔고 그 돈으로 서울의 ‘똘똘한 한 채’를 장만하는 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오히려 자화자찬 일색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부동산시장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서울 100대 아파트에서 임대차 계약 갱신율이 법 시행 전 1년 평균 57.2%에서 법 시행 이후 77.7%까지 늘었고 임차인의 평균 거주기간도 법 시행 전 평균 3년6개월에서 5년으로 증가했다.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 크게 제고됐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부가 임대차 시장 불안은 외면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기존 세입자는 임대차법 개정으로 주거 안정이 제고됐겠지만, 신혼부부나 청년 등 새로 임대차 계약을 맺어야 하는 사람의 주거 안정은 오히려 악화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임대차 신규 계약이 갱신 계약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등 ‘이중가격’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서울 강동구 고덕 그라시움 아파트 전용면적 85㎡ 전세 거래는 각각 11억원과 5억7750만원에 거래됐다. 5억7750만원은 전월세상한제(5%) 적용을 받은 갱신 계약인 반면, 11억원은 신규 계약으로 추정된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향후 수년간 서울에 대규모 공급이 없어 전셋값 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장 갱신 계약을 한 세입자도 2년 뒤 전셋값 인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주거 안정이 제고됐다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임대차법뿐 아니라 다주택자에 대한 전방위적 세제 강화도 임대차 시장 불안 요인이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증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만 해도 4.5%였지만, 지난해에는 14.2%로 3배 이상 늘었다. 김 교수는 “정부가 다주택자의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을 키우다 보니 다주택자 사이에 차라리 증여하는 게 낫겠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원래 같으면 임대차 물량으로 나왔을 다주택자 보유 아파트들이 증여로 다주택자 자녀에게 가면서 임대차 공급 감소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둘째 주 전국과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각각 0.16%, 0.22%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비수기인 상황에서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을 이사 철이 다가오는 다음 달부터는 임대차 시장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종=이종선 기자, 이택현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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