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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에세이들 쓰십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에세이 전성시대다. 에세이가 쏟아지듯 출간되고 있다. 서점가에는 에세이 분야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인문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연구자들, 문학적 가치가 담긴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들, 정보를 전하는 기자들의 글쓰기는 전통적 맥락으로 이어지지만 에세이는 매일 새롭게 몸을 바꿔 선보이는 형국이다. 어떤 면에선 전통적 글쓰기 장르에도 에세이의 새로운 스타일이 틈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용성, 자전적 고백, 전문 지식 공유의 성격이 섞여 있다. 이렇듯 누구나 자유로운 형식으로 쓸 수 있는 게 에세이다.

왜 에세이는 이렇게 각광받게 됐는가. 출판계 외부적으로는 플랫폼의 발전이 큰 이유다.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웹에는 글쓰기 공간이 무한히 늘어나고 있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글을 정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구독자 수에 따라 글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공간도 있다. 사적인 글쓰기는 이제 공적인 웹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개인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일기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이 공감할 수 있다면 그 글의 가치는 새롭게 인식된다. 출판인으로서는 이런 공간의 탐색이 책의 필자 발굴과 연결돼 기획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 관련 강좌 시장도 부흥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열린 강좌들은 문장 기술과 스토리텔링 기법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파고들며 글쓰기를 추동한다. 이쯤 해서 참된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방법론은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터득할 수 있지만 왜,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답은 자신이 내릴 수밖에 없다.

오래전 읽었던 이청준 소설 ‘자서전들 쓰십시다’가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삶과 업적을 대필하는 자서전 작가인 젊은 주인공이 실체 없는 삶을 미화하는 허구의 글쓰기에 회의를 느껴 작업을 중단하는 상황 속에서, 삶의 진실을 자각하고 글쓰기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다. 이청준은 자신의 문학적 작업을 “자기 구제의 한 몸짓”이라고 고백했는데, 반성 없는 글쓰기는 자신을 속이고 결국 타인을 속이는 허망한 거짓에 불과하다는 주제의식이 선명했다.

소설 속에서 자서전 일거리를 줬던 코미디언은 자신을 어릿광대가 아닌 ‘누구 못지않은 깊은 철학과 신념을 가진 인물’로 창조해 달라고 요구한다. 자수성가한 한 인물은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는 아집을 글로써 포장해 달라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증언이 없는 자서전의 허상을 깨닫고 그만두는 대필작가는 스스로를 “자서전들 쓰십시다”라고 외치며 영혼을 팔았다는 자각에 부끄러워한다. 이 소설을 끄집어낸 것은 에세이가 타인의 호응과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짜로 만들어버리는 위험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즐거움과 쾌락은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데 있는 것 아닌가.

숏폼 콘텐츠라고 불리는 유튜브나 틱톡 같은 영상 매체는 이제 일상이 됐다. 짧은 길이의 영상에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의 소비는 내면에 침잠하는 글쓰기 열풍과는 사뭇 배치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 동전의 앞뒷면처럼 개인적 자기 표현의 열망은 두 가지 현상으로 드러난 것뿐이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다는 열망.

그런데 이 표현 욕구의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주안점을 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저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글쓰기의 궁극적 목표는 그야말로 글쓰기 자체다. 에세이를 쓰는 즐거움은 자신이 체험한 고유의 이야기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떤 체험을 글감으로 건져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 글로써 그 체험이 지속적으로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의 가치는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그래서 나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말한다. 에세이들 쓰십시다, 당신이 겪은 고유의 일을 기록함으로써 그 이야기를 완결하고 우주 속에 남게 하자고. 그렇게 남겨진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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