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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혼○’ 시대를 위한 아포리즘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같이 사는 시대에 ‘홀로서기’가 대안이 됐다면, 따로 사는 시대에는 ‘더불어 서기’가 대안이 된다. 인류 역사상 오랫동안 인간의 생존 방식은 ‘같이 살기’였다. 곧 집단성이 강조된 삶이다. 오죽하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러나 인간 조건이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은 집단 중심적 삶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홀로서기에 주목해 왔다. 세속적 가출에서부터 종교적 출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홀로이고자 한 노력은 광범위하다.

인간 조건의 양극성 중 하나가 집단성과 독자성이다. 정의상 양극성이란 양극을 전제하기에 한 극만 배타적으로 취하는 건 이론으로는 몰라도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집단성 속에 독자성이, 독자성 속에 집단성이 녹아 있게 마련이다. 예를 다시 든다면 가출 청소년도 유사 친족을 만들고, 수도승도 독거(獨居)에서 공주(共住)로 수도 형태를 전환했다.

근대화 핵심 중 하나가 ‘개인주의’의 발달이었고, 후기근대사회에는 개인주의를 넘어 개인적 주도권을 강조하는 ‘개인주도주의’(필자의 조어)와 개인적 입장을 내세우는 ‘개인확증주의’(필자의 조어)가 편만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다양하게 지속된다. ‘자기’가 화두가 된 자기 경영, 자기 개발, 자기 사랑 등의 유행은 이미 지난 일이 되고 있다. 이제 개인주도주의와 개인확증주의의 일환으로, 소비 형태도 단순한 소비자에서 자신의 창조성을 가미한 ‘생산참여소비자’(prosumer=producer+consumer)로 전환한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 영역에서도 교인들이 종교기관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소비하던 소비자에서 스스로 자신의 영성 개발을 추구하면서 종교기관의 도움을 요청하는 생산자로 바뀐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일인’ ‘홀로’를 거쳐 ‘혼○’ 시대로 급격하게 전환하고 있다. 혼밥, 혼술 등 관련 용어가 늘어가는 것이 그 징후이다. 그런데 일인, 홀로가 주로 하나라는 수 개념 혹은 독자성을 의미했다면, 혼○은 고독과 단절과 위약성의 뉘앙스가 더 강조되면서 시대상을 묘사하는 새로운 대표단어가 되고 있다.

역설적 사실이지만 일인, 홀로, 혼○ 시대 현상이 심화될수록 새로운 집단성의 요구가 대두된다. 그 이유는 후기근대사회에 우리가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근대사회의 삶에 있어 핵심적 개념은 바로 ‘남’이다. ‘자신’과의 관계도 ‘가족’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의 삶 특히 일상생활에 있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는 남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남과 같이 사는’ 사회에 살게 됐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태도가 절실하다.

인구어(印歐語)를 살피면, ‘낯선 사람, 적, 손님, 호텔, 병원, 환대’의 단어들이 한 가지 단어(원인구어 *ghos-ti-; 라틴어 hostis)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남을 부정적 시각에서 보면 낯선 사람에서 적으로 옮겨가고, 긍정적 시각에서 보면 맞이해야 할 사람에서 환대의 대상으로 나아간다. 남에 대한 교훈은 이미 고대부터 주어졌다. 소극적 표현으로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논어, 위령공편)이 있고, 적극적 표현으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성경, 마태복음)가 있다.

남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따라 남은 ‘놈’이 될 수도, ‘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이에게 있어 나도 마찬가지다. 놈보다는 님이 많은 사회에 살고 싶다. 얼마 전 한국이 꿈에 그리던 선진국 지위를 공식 인정받았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는 길은 성숙한 시민사회가 되는 것이다. 시민교육의 첫걸음은 서로를 놈이 아니라 님으로 대하는 것이다.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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