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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아이스크림 회사의 정치투쟁

천지우 논설위원


본업과 무관한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아이스크림 회사가 있다.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가 핵무기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에 항의하며 ‘평화 아이스크림(Peace Pop)’을 출시했다. 이 제품 포장지에는 국방 예산의 1%를 평화 사업 용도로 돌리자는 구호가 적혔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첫 흑인 대통령이 됐을 때는 오바마의 선거 구호 ‘예스 위 캔(Yes, We Can)’을 본뜬 ‘예스 피칸’ 아이스크림을 내놨다. 반(反)트럼프 운동을 지원하는 ‘피칸 저항(Pecan Resist)’, 유색인종에게 불평등한 형사 사법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저스티스 리믹스드(Justice ReMix’d)’ 등도 출시했다. 별난 작명이지만 40여년 동안 해오다 보니 미국 소비자들도 익숙해졌다고 한다.

‘벤앤제리스(Ben&Jerry’s)’라는 업체 이야기다. 뉴욕 출신 히피였던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가 1978년 버몬트주에서 창업한 이 회사는 2000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팔렸지만, 창업자 벤과 제리의 행동주의 철학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성장호르몬 투약 없이 키운 젖소의 우유와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다. 이익의 일정 부분은 여러 시민단체를 돕는 데 쓴다. 지난해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직후에는 ‘우리는 백인 우월주의를 분쇄해야 한다(We Must Dismantle White Supremacy)’는 메시지를 냈다. 아이스크림을 팔다가 취미삼아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게 아니라, 진보 시민운동가들이 어쩌다가 아이스크림을 팔게 된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이스크림 판매로 돈을 버는 게 위선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벤앤제리스는 최근 해당 지역(요르단강 서안)에서 더 이상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부 지역에서 고작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나 없어지는 일일 뿐인데, 이스라엘은 총리부터 “잘못된 반이스라엘 결정”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벤앤제리스가 미국에서 갖는 여론 영향력이 만만치 않아서 그런 듯하다.

천지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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