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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문재인 정권에서의 능력주의


서른여섯 야당 대표가 가져온 부수 효과 중 하나는 ‘능력주의’ 논의 활성화다. 지난해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엘리트 세습’(대니얼 마코비츠) 등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다룬 책들이 연이어 출간된 이후 다시 능력주의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대변인을 공개 경쟁으로 뽑은 데 이어 공천 자격시험 도입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며 공약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여당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권 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대표가 이른바 능력주의 신봉자이기 때문에 상당히 논쟁적 인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고민정 의원도 SNS에 샌델을 인용해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고 적었다. “능력과 경쟁이라는 시장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확대경제장관회의 발언이 이 대표를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있었다.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고 필요하다. “탐나는 물건이나 사회적 지위를 놓고 경쟁할 때, 모두가 정말로 공평한 기회를 갖고 있는가?”라는 샌델의 질문이나 “능력주의는 소득과 부의 최대 원천이 토지가 아닌 노동력인 세상을 위해 맞춤 제작된 귀족제도”라는 마코비츠 분석은 합당하다. 세습귀족이 부와 지위를 물려주듯 고소득 직업을 얻도록 교육 기회 등으로 능력까지 대물림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제언이 될 것이다.

다만 현 정권에 참여한 이들이 말한 능력주의 비판이 그 자체로 옳을지 몰라도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능력주의 문제가 심화됐다기보다 반대로 능력주의가 너무 무기력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 때문이다. 먼저 부동산 정책 실패는 능력주의의 무능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4년 동안 서울 아파트(30평형대) 가격은 6억2000만원에서 11억9000만원으로 올랐다. 고소득자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저축이나 대출에선 유리하지만 4년간 5억7000만원의 집값 상승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능력주의가 바탕한 “소득과 부의 최대 원천이 토지가 아닌 노동력인 세상”과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이전 가능한 부모 자산, ‘영끌’에 대한 결단이 소득과 부의 원천이 됐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조국 사태’는 또 다른 예다. 샌델은 저서에서 2019년 미국에서 터진 대형 입시 비리 스캔들을 다룬다. 문제가 된 학부모들은 시험 답안지 조작이나 가짜 체육특기생을 만드는 방법으로 자녀를 명문대에 보냈다. 이를 기획한 악덕 입시상담업자는 그 수법을 ‘옆문 뚫기’로 부른다. 실력으로 보내는 ‘정문’, 기부로 입학시키는 ‘뒷문’과 달리 불법으로 옆문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샌델은 부모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정문과 뒷문을 능력주의 그늘로 보고 이에 대한 비판에 집중한다. 이를 감안했을 때 조국 전 장관 자녀 사례는 샌델이 비판한 능력주의 범주에도 들지 않는다. 정경심 교수 1심 재판부가 표창장 위조와 인턴 활동 확인서 허위 발급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실망감을 야기했다”고도 했다.

현 정권 출범 후 이런 일련의 경험으로 인해 2030을 중심으로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차곡차곡 청약 가점과 저축을 쌓으며 내 집 마련에 다가가던 상황에서 결승선이 갑자기 저 멀리 뒤로 갈 때의 황당함, 공정해야 할 입시에서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허탈함을 가장 가깝게 체감한 세대가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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