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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댓글 조작 공모, 피해자는 국민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수년 전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단연 세간의 화제였다. 아이돌 연습생들이 피 말리는 서바이벌 경쟁을 벌이고 시청자 투표로 순위를 결정하는 신개념 오디션이었다. 어디를 가든 대화의 소재였고 ‘픽미 중독’도 일으킬 만큼 열풍이었지만, 이 오디션의 배후에는 투표 조작이라는 끔찍한 범죄가 있었다.

‘프로듀스’ 제작진은 생방송 경연에서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시청자들의 유료 문자 투표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 3월 대법원은 ‘업무방해’를 골자로 1, 2심의 징역형 원심을 확정했다. ‘국민 프로듀서’는 국민 사기극으로 전락했다.

재판부는 이 조작 모의로 인해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이 현저하게 훼손되었고, 연습생들은 평생 트라우마로 살 수밖에 없으며, 시청자들은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게 됐다’라며 범죄의 위중함을 판시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한국 방송사의 흑역사라며 개탄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드루킹’ 일당의 온라인 댓글 조작 공모는 ‘프로듀스 101’ 사기극의 판박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최측근이었던 김 전 지사가 ‘드루킹’ 악당과 손잡고 문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했다. 점잖게 말하면 ‘묵인·지시’지만, 사실상 30여 차례 긴밀히 소통하며 조작을 ‘진두지휘’한 거다. 정치사의 흑역사를 제대로 썼다. 지난 21일 대법원은 김 전 지사의 조작 가담 행위에 대해 징역 2년을 확정했다.

특검팀에 따르면 드루킹 악당들은 2016년 1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해 온라인 뉴스 기사 댓글 141만여개에 약 1억번의 공감·비공감 클릭 신호를 보내 댓글 순위를 조작했다. 이 중 8840만회를 김 전 지사와 공모했다고 봤다. 1억번 조작이라니 참 간도 크다.

평생 트라우마로 살아갈 ‘연습생’은 누굴까. 공개된 피해 연습생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였다. 대선 전초전의 다크호스였던 반 전 총장은 조작된 댓글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공항철도 티켓 끊는 모습이 ‘서민 코스프레’로 둔갑했다. ‘프레임’ 댓글은 불법 조작된 수천수만개의 ‘좋아요’를 무기로 반기문 전 총장의 영혼을 탈탈 털었다.

더 억울한 건 안 대표다. 김 전 지사라는 든든한 뒷배에 고무된 드루킹 일당은 화력을 안 후보에게 집중했다. ‘MB 아바타’를 필두로 ‘안초딩’ ‘갑철수’ 등 닥치는 대로 조롱의 언어를 끌어왔다. 조작된 수만개의 댓글이 만들어지고, 역시 조작된 수십수백만의 ‘좋아요’가 이 댓글을 상위권으로 띄웠다. 국민의 마음에 혐오의 감정이 자랐고, 안철수 지지율은 3주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문자 투표에 나섰던 ‘프로듀서 101’ 시청자들이 느꼈던 배신감처럼, 내가 작성한 댓글이, 내가 눌렀던 ‘좋아요’가 조작되고 왜곡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또 누군가가 그럴 수 있다는 불안함에 사로잡힐 때 국민은 좌절하고 민주주의의 심성은 멍든다.

배신감을 극대화하는 것은 이 전대미문 정치 사기극의 최대 수혜자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이 최대 피해자인데, ‘공정과 정의’를 국시로 삼는 현직 대통령은 최대 수혜자가 된 꼴이다. 어떻게 이런 아이러니가 생겼을까. 정치사의 추악한 흑역사 앞에 대통령이 침묵하는 건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진실’과 ‘동지애’를 가장한 패거리 정치의 민낯을 보는 것도 참 불편하다. ‘진정성을 믿는다’, ‘통탄할 일이다’, ‘선한 미소로 돌아와라’. 여권 대선후보들의 이구동성 범법자 감싸기는 참으로 눈물겹다. 평생 트라우마를 가슴에 져야 할 사람들, 민주주의를 도둑맞은 국민 따위는 안중에 없나 보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때 펄펄 뛰던 그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 국가 조직이 조작한 93개의 댓글은 국기문란 사건이고, 민간 조직이 조작한 1억 개의 댓글 순위는 일개 선거 브로커의 불장난인가. 수미일관 ‘내로남불’에 말문이 막힌다.

2심 재판부가 밝혔듯 ‘댓글 순위 조작 범행은 온라인상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사회 전체의 여론까지 왜곡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이를 ‘묵인·지시’하고 총영사직까지 제안한 범죄자를 어떻게 일방적으로 감쌀 수 있나. 미래 범죄에 용기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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