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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여름휴가, 게을러도 괜찮아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뇌 건강을 해치는 일상 습관 중 하나로 집중력과 단기 기억력을 떨어뜨려 치매를 유발하는 행동은?’ ‘정답은 멀티태스킹(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행동)입니다.’ TV 예능 프로그램 속 퀴즈를 보다가 멈칫했다. 노트북을 켜놓고 기사를 검색하면서 TV를 힐끔거리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딱 걸린 기분이었다. 어째 요즘 자꾸 단어가 생각나지 않더라니….

방송에서는 뇌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게 돼 있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찾아봤더니 영국 런던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실험 참가자들의 지능지수(IQ)가 15 가까이 떨어졌다고 했다. 밤을 꼬박 새우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TV를 보면서 SNS를 하고,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를 보는 게 현대인의 일상 아닌가.

멀티태스킹의 반대말쯤 되는 ‘닉센(Niksen)’이라는 게 있다. 네덜란드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뜻인데, 몸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잠시 멈출 것을 강조하는 휴식법이다. 덴마크의 ‘휘게’나 스웨덴의 ‘라곰’처럼 평온하고 소박한 행복을 강조하는 네덜란드식 키워드로 미국에서 유행한 뒤 한국에도 알려졌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멍 때리기’가 있고, 이탈리아에는 ‘돌체 파르 니엔테(Dolce far niente·달콤한 게으름)’라는 관용구가 있다. 그런데 젊은 치매의 지름길을 걷는다는 충격 때문인지 새삼스레 하루 10분 닉센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신간을 e북으로 다운받았다.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들이다. ‘출퇴근길에 페이스북에 접속하거나 캔디크러시 게임을 하는 대신 단 몇 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점심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는다. 일 하나를 끝낼 때마다 잠깐의 닉센으로 마무리한다. 잠들기 전에 뉴스를 확인하지 않는다.’ 멍 때리기 위해 집안에 편안한 소파나 의자를 마련하되 TV가 아닌 창문을 마주하게 배치하라거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작은 바구니를 마련해 스마트폰을 놓아두라는 팁도 있다(올가 메킹, ‘생각 끄기 연습’).

멀티태스킹을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분이 들지만 정작 인간의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게 책의 주장이다. 생각을 끄는 것은 온전히 집중하고 완전히 이완함으로써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삶의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휴식의 아이디어를 얻을 책들은 또 있다. ‘이토록 멋진 휴식’ ‘게으름에 대한 찬양’ 같은 것들로, 짧게 나눠 쓰기로 한 올여름 휴가를 함께하게 될 책들이다. ‘이토록 멋진 휴식’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때때로 모든 연락을 끊고 골프와 카드 게임, 긴 산책, 카우보이 소설 읽기로 휴식을 취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더 잘 쉬기 위한 기술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는 ‘행복해지려면 게을러져라’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휴가 내내 빈둥댈 수는 없으니 하루쯤은 가수 선우정아의 ‘뒹굴뒹굴’을 주제곡 삼아 보내볼 셈이다. ‘뒹굴뒹굴 데굴데굴/ 주말을 내내 한 자리에서/ 뒹굴뒹굴 데굴데굴/ 내 몸 하나 누울 딱 그만큼만’. ‘생각 끄기 연습’의 가르침대로라면 휴가 때 어디에 다녀오고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안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허송세월했다는 죄책감이나 불안함을 갖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 4차 대유행과 찜통더위 속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모두 건강하고 게으름으로 충만한 슬기로운 여름휴가 되시기를.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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