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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문화스케치] 실타래와 실마리


매주 도서관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요즘은 온라인으로 만난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느끼지 못해 아쉬우면서도,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나날이다. ‘이렇게라도’는 팬데믹 이후에 자주 쓰는 말이 됐다. 많은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슬그머니 저 말을 떠올렸다. ‘이렇게밖에’를 쓸 때는 안타까움만 가득했는데, ‘이렇게라도’를 사용하면서 절박한 상황에 들이치는 빛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 누렸던 것들을 현 상황에 걸맞은 방식으로 바꾸는 데 유연해졌음은 물론이다.

온라인 강연의 좋은 점은 시민들이 질문을 많이 던진다는 것이다. 현장 강연에서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이목이 집중된다.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다들 편안하게 질문을 던진다. 대체로 읽기와 쓰기로 수렴하는 질문이다. “대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에 나는 “저도 매번 그래요”라고 대답한다. 그러곤 글을 시작하기 좋은 첫 문장을 몇 개 소개한다. 읽는 이가 관심을 가질 법하면서도 누구나 쓸 이야깃거리가 한두 개씩은 있을 문장 말이다.

가령,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을 보자. 휴가나 여행은 감히 꿈꾸기 어려운 요즘에는 매일 엇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과거의 좋았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호시절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왕년’이나 ‘한때’로 명명될 수 있는 특정 시기 말이다. 일상의 차원에서도 ‘한번’은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어느 때나 기회’를 뜻하는 ‘한번’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갔던 무수한 순간들을 지금 여기에 붙박는 역할을 한다. 이는 망각을 거스르는 적극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저 문장으로 출발해 한 편의 글을 완성한 이들은 흘러가는 시간의 한 귀퉁이에 압정을 누른 셈이다.

어떤 이는 어릴 적 먹었던 소시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며 소시지 반찬 하나로 행복했던 그때를 글에 불러들였다. 경차를 구입한 뒤 시간만 나면 전국을 돌아다니던 시기를 회상하는 이도 있었다. 차가 생기니 기동력이 생겼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게 가능성을 뛰어넘어 삶의 가치가 됐다고도 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처연하게 울고 있는 누군가에게 손수건을 건넨 뒤 그 사람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는 이도 있었다. 손을 내밀고 기꺼이 그 손을 잡을 때, 사람은 비로소 인간(人間)이 된다. 친구 사이, 연인 사이, 흉허물없는 사이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처럼 도처에서 길어 올린 ‘한번’이 글의 단단한 씨앗이 됐다.

읽기와 쓰기 모두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는 일이다. 읽기는 실마리를 붙잡고 그것을 둥글게 감아 거대한 실타래를 만드는 일이다. 첫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에 도달할 때까지 참을성이 필요한 일이다. 첫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지루함이 예상되지만 끈덕지게 다음 문장을 좇아야 한다. 어려운 글이든 술술 읽히는 글이든, 책을 읽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반면 쓰기는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실타래는 내 앞에 놓여 있을 수도 있고 내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골몰할 때, 실타래는 더욱 크고 단단해 보인다. 실마리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첫 문장이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다.

이렇듯 첫 문장은 번번이 목을 잡는다. 글을 쓰자고 손목을 잡고 나를 이끄는 것도, 글쓰기 직전에 발목을 잡는 것도 첫 문장이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거대한 실타래 앞에 서 있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실타래를 온힘 다해 굴려보면 실마리가 나올 것이다. 실마리를 잡는 순간, 글이 술술 풀리길 바라기도 한다. 글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강연을 듣고 다시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 조용히 노트를 펼치는 이들을 떠올린다. 묵묵하게 하는 기록은 모든 글쓰기의 토대가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니 누가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만이 실마리를 다시 실타래로 만들 수 있다.

살아온 시간과 관계없이, 책과 삶은 어떤 실타래다. 실마리를 잡고 실타래를 향할 때 우리는 바깥쪽으로 모험을 한다.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을 때 우리는 안쪽으로 모험을 한다. 읽고 쓰는 한, 우리는 모두 모험가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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