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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 칼럼] 제7공화국 문을 열자


대선 때면 늘 등장하는 개헌론… 국민의 70% 가까이,
국회의원 90% 이상 개헌 찬성하는데도 선거 후면 용두사미로 끝나
‘87년 체제’ 모순과 한계 인정하면서도 깨부수지 않는 건
이율배반이자 역사의 대죄… 개헌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

대통령선거 예비선거 경쟁이 본선만큼이나 뜨겁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누가 우군이고 적인지 모를 정도로 예비선거전이 피아가 혼재돼 싸우는 백병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최후의 1인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도에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대선은 회고적 투표 성향이 강한 총선과 달리 전망적 투표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보다 미래와 비전을 보고 투표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네거티브 공세만으론 곧 확장성의 한계에 부딪힌다. 네거티브 공방 속에서도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정책을 선보이는 이유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이렇게 바꾸겠다.”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선전이다. 수많은 선전 중엔 헌법 개정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 적지 않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개헌은 단골 공약이 되다시피 했다. ‘87년 체제’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여야 모두 4년 전 19대 대선에서도 개헌을 공약했으나 용두사미로 끝났다.

내년 3월 치러질 20대 대선에서도 개헌은 주요 이슈가 될 게 분명하다. 여야 주요 예비후보들이 개헌 담론을 꺼내고 있어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극소수만 개헌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일 뿐 대다수가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국민과 국회의원 여론도 그렇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7, 8일 10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6.4%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유로 49.4%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여년 동안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국회의원은 더 높다. 이달 실시된 조사에서 응답자(전체 300명 중 178명)의 93.3%가 개헌에 찬성했다. 개헌에 대한 국회의원의 열망이 이렇게나 강하고, 국민 과반 또한 바라는데 여태 개헌이 이뤄지지 않은 건 미스터리다.

현재까지 제시된 개헌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시대변화에 맞는 기본권 확대 및 강화에 관한 것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1노3김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생명을 다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아울러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 등 시대 변화에 맞게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커져 왔다. 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강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국회 의견도 다르지 않은데 대선 때만 깜짝 이슈로 등장할 뿐 그 이후엔 도무지 진전이 없다. 개헌을 국가 발전 측면이 아닌 당리당략의 정략적 판단에서 접근한 탓이다. 여기에도 내로남불의 기제가 어김없이 작동한다. 내가 하면 국가 발전을 위한 것이고, 네가 하면 정권 연장용이라는 고리타분한 낙인찍기 말이다.

이번엔 이런 퇴행적인 틀을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 국민의 70% 가까이, 국회의원의 90% 이상이 인정하는 87체제의 모순과 한계를 부수지 않는 그 자체가 이율배반이며, 역사와 국민에게 대죄를 짓는 행위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올해 제헌절 경축사에서 “내년 대선 일정이 있다고 개헌 추진을 미룰 수 없다. 오히려 대선 형세를 점치기 어려운 지금이 불편부당하게 개헌할 수 있는 적기”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반향은 거의 없었으나 새겨들을 가치는 충분하다. 국회의원 대상 조사에서 ‘올해 개헌특위를 구성해 내년 대선에 맞춰 국민투표를 추진해야 한다고 한 34.9%의 응답은 ‘내년 선출되는 새 대통령 임기 내 추진(44.6%)’에 비해 비록 적지만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박 의장뿐 아니라 정세균 전 총리도 내년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시간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개헌은 의지의 영역인 것이다.

헌법 개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개헌 트라우마다. 대통령 집권 연장을 위해 걸핏하면 누더기 헌법을 만들었던 우리 헌정사를 반추해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그럼에도 그게 염려된다면 개정 헌법을 차차기 대통령부터 적용하는 방안도 있다. 그런 점에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저서 ‘대한민국 금기 깨기’에서 주장한 개헌론은 주목할 만하다. 좌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자적 입장에서 제시한 개헌론이어서다. 곧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제7공화국 문을 여는데 주저할 여유가 없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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