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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자책골

김의구 논설위원


1994년 1월 카리브컵 바베이도스-그레나다 축구경기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2-0으로 앞서다 후반 38분 1골을 빼앗긴 바베이도스는 4분 뒤 자기 골문으로 공을 차넣었다. 8강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 2골 차 이상 승리가 필요했던 바베이도스가 의도적으로 자책골을 넣은 것이다. 연장 승부의 선취골을 2골로 인정하는 ‘더블 골든골’ 규칙 때문이었다. 바베이도스는 남은 3분 동안 자기 골문은 물론 상대 자책골까지 막는 분주한 노력 끝에 연장전에 들어가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4강 진출엔 실패했다. 이후 이 규정은 폐기됐다.

축구경기에서 자책골은 의외로 잦다. 피로가 누적되거나 긴장감이 높은 경기는 실수 가능성이 더 크다. 2014년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브라질이 개막전 첫 골을 자책골로 기록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선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가 자책골을 넣기도 했다.

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귀국 후 술집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16강전 진출이 좌절된 이후 대표팀에 대한 테러 소문이 돌아 감독은 에콰도르로 피신했고 다른 선수들도 귀국을 늦췄다. 에스코바르는 책임감 때문에 귀국길을 강행했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의 12주기에 최초의 공식 길거리축구대회를 개최했고 우승컵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지난 25일 한국과의 경기에서 루마니아가 전반 27분 자책골을 냈다. 한 방송사가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란 자막을 넣었다. 자책골도 경기의 일부분이지만, 페널티킥 실축만큼 큰 트라우마를 남긴다. 해당 선수를 비아냥거리는 듯한 이런 문구는 비신사적일 뿐 아니라 상처를 덧내는 행위다. 축구팬 가운데는 전반전에 퇴장을 당해 10명으로 끝까지 열심히 뛴 루마니아의 투혼에 박수를 보낸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승리도 좋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가치 있다. 페어플레이라면 우리 편이든 상대든 갈채를 보낼 수 있는 성숙한 응원, 페어 방송을 기대한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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