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패션이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며, 달리는 이 남자

<23> 유재석 : 인간의 얼굴을 한 예능

‘21세기 대중문화대장정’ 3부작(1998. 12. 29~31, MBC)을 연출한 적이 있다. 매회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대중스타로 안성기(영화 부문) 조용필(가요 부문) 김국진(코미디 부문)이 각각 1위로 선정됐다. 한 해를 빛낸 게 아니라 100년(20세기)을 빛낸 스타로 뽑혔으니 본인들도 기분이 남달랐을 성싶다. 지금 다시 이런 조사를 한다면 대중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트로트 신인 가수 ‘유산슬’은 코미디언 유재석의 새로운 캐릭터였다. MBC 제공

조용필에게 방탄소년단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만약 답변을 거부하거나 ‘세계인들이 이런 음악에 열광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팬으로선 좀 슬플 것 같다. 그러나 역시 거인은 달랐다. “제가 빨리 태어나길 잘했죠. 지금이라면 경쟁이 될까요.” 조용필도 방탄도 다 올라가는 겸손의 화법이다.

‘역사저널 그날’(KBS1TV)은 ‘우리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인 하루’를 조명하는 교양프로그램이다. 언젠가 ‘예능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가 생긴다면 1991년 5월 5일도 목록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지금 활동 중인 개그맨 중 다수가 이날 방송된 ‘제1회 KBS 대학개그제’에 출연했다. 당시엔 완전무명이었으니 섭외 받은 게 아니라 자발적·의욕적 출연이었다. 누군가에겐 추억의 명장면이고 누군가에겐 지우고 싶은 화면일 수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1991년 당시 대학가에서 가장 웃기는, 혹은 웃기려는 청춘들이 출동했으니 그 무대의 열기가 대단했을 것이다. 특별심사위원으로 원조 한류 코미디언 쟈니윤(1936~2020)도 있었다. 지금 다시 보니 재미보다는 의미적 요소가 강하다. 30년 전 그 프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교훈을 얻을 수도 있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오래 살아남는 법은 무엇인가’ 그때는 예능이지만 지금은 교재가 된 이 프로를 다시 들여다보자.

개인 혹은 두세 명이 짝을 이뤄 총 17팀이 출연했는데 지금도 예능에 나오는 사람들만 실명을 밝히기로 한다. 참가번호 1번은 김수용인데 출연 동기가 좀 싱겁다. “키 큰 사람은 싱겁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3번은 나중에 ‘순풍산부인과’(SBS)에서 단역 캐릭터로 등장하는 윤기원, 4번은 봄날 같은 웃음을 몰고 올 작정이라고 포부를 밝힌 남희석, 11번은 개그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고 싶다는 박수홍이었다. 16번은 개그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양원경과 김용만이었다. 맨 끝으로 17번 김국진이 등장한다. 사회를 맡은 임성훈과 이금희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개그계의 영원한 디딤돌이 되고 싶다는 경기대 영문과 4학년 김국진군과 금병완군입니다.” 이때 일화가 있다. 한 여대생이 김국진 금병완과 팀을 짜서 예선 1, 2차 시험까지 통과했지만 3차 개인전에서 낙오하고 만다. 방송 출연이 좌절된 것이다. 본인 말로는 ‘그 충격에 가출하고 과자 공장에 취직한 뒤 일을 하다가 다시 꿈을 키워 마침내 KBS 10기 개그맨으로 입사’하게 된다. 이 사람이 조혜련이다. 하마터면 김국진 등과 동기(KBS 공채 7기 개그맨)가 될 뻔했다.

‘예능저널 그날’의 자료화면을 소개하면서 나는 의도적으로 한 팀을 뺐다. 지금 설문조사를 한다면 최상위권에 들어갈 인물이 바로 참가번호 9번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당시 진행자의 소개 멘트를 그대로 옮겨본다. “오로지 개그가 하고 싶어서 엉겁결에 모였다는 두 남자 서울예전 방송연예과 1학년 유재석군과 최승경군입니다.”

출연자 모두 대단한 재주꾼들이었지만 특별히 그날 운이 좋고 컨디션이 좋았던 사람들의 명단을 살펴보자. 1등은 김용만과 양원경, 2등은 이영재였다.(참고로 이휘재의 본명도 이영재인데 동명이인을 피해 MBC 영재는 휘재가 됐다) 3등은 남희석, 4등이 박수홍과 김국진이었다. 앞으로 열심히 하면 잘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장려상인데 그 수상자들이 바로 김수용 윤기원 최승경 유재석 등이었다.

이제부터는 유재석에 집중하자. 사실 그의 데뷔는 1991년이 아니다. 아역 탤런트 출신도 아니다. 원종배 아나운서가 진행한 ‘송년특집 비바 청춘’(1989. 12. 30 KBS2TV)에 용문고등학교 2학년생 유재석군으로 처음 등장한다. 개그 연기를 제법 실감 나게 했다. 화면에는 나중에 PD가 돼 ‘단박 인터뷰’(2007~2008) ‘추적 60분’(2008~2009)을 진행한 김영선(순천여고 1학년)양도 등장한다.

‘놀면 뭐하니?’ 포스터에 나열된 유재석의 ‘부캐’들. MBC 제공
‘고독한 면접관’으로 나선 ‘유 본부장’. MBC 제공

유재석은 지상파 3사(KMS)에서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을 10년 이상 진행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들로 유재석을 규정하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해피투게더’(2003~2020 KBS2TV) ‘무한도전’(2005~2018 MBC) ‘런닝맨’(2010~현재 SBS). 간단하게 이어붙이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지금도 달리는 사람’이다. 어찌 탄탄대로만 있었겠는가. ‘이젠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힘들었던 나의 시절 나의 20대/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너의 길을 가’ 2011년 ‘무한도전’(MBC) ‘서해안고속도로가요제’에서 이적과 함께 이 노래(‘말하는 대로’)를 부를 때 팀명이 ‘처진 달팽이’였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가장 초라했던 시절을 담은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단기적으로 대중은 ‘크게 높이 빨리’를 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드럽게 넓게 멀리’를 선호한다. ‘꽃보다 남자’를 흔히 F4라 칭하는데 지금 예능계에는 30년을 버텨온 S4가 있다. 1970~72년에 태어난 이들은 그 흔한 개인기 하나 없지만 튼튼한 기본기로 오래 살아남았다. 그들의 특징을 굳이 하나씩 꼽자면 강한 남자(Strong 1970년생 강호동), 달콤한 남자(Sweet 1971년생 신동엽), 영리한 남자(Smart 1970년생 김구라), 성실한 남자(Sincere 1972년생 유재석)다.

방송사 다닐 때 ‘점 보러 간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문 열자마자 점쟁이가 대뜸 ‘어릴 때 동네에 감나무가 있었지’ 했단다. 당황한 표정으로 ‘없었는데요’ 하니까 그가 씩 웃으며 말하더란다. “있었으면 넌 죽었어.” 있었다면 과거를 보는 투시력, 없었으니까 최고 순발력이다.

나는 이 얘기를 약간 변주해봤다. 어떤 감(感)이 우리를 살리고 어떤 감이 우리를 죽일까. 자신감은 좋지만 기대감은 꼭 좋은 게 아니다. 기대감은 부담감의 어머니다. 엄마의 기대감은 자식에게 지나친 부담을 준다. 대중의 지나친 기대감도 스타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중심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속 작은 이야기’(‘말하는 대로’ 가사 중)

예능인의 감이 떨어지면 대중의 감흥도 떨어진다. 그래서 호감은 살리는 감, 반감은 죽이는 감이다. 비호감 거부감 적대감은 왜 생기고 유대감 동질감 친밀감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유재석은 오직 예능감 하나만으로 바구니를 채운 사람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는 뭘 했다기보다 뭘 안 한 사람이다. 뭘 안 했을까. 과격 과속 과장을 안 했다. 사라진 선배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조심조심 걸어왔다. 그를 보면 뒤에 붙는 감(자신감, 성취감)보다 앞에 붙는 감(감사, 감동)이 더 오래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5월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한 유재석. 뉴시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속담은 수정돼야 한다. 유재석은 어느 인터뷰에서 ‘예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실력이 아니라 초심이 달라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를 유느님(유재석+하느님)이라 부르는 팬들이 있는데 인성이 한결같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비 오는 날도 있고 구름 낀 날도 있지만 하늘이 사라진 날은 없다.

주철환 프로듀서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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