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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쓰고 헛기침하던 조선 양반님들 ‘살림남’이었네

[책과 길]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정창권 지음 돌베개, 260쪽, 1만5000원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 보낸다. 사랑방에 두고서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연암 박지원이 자식에게 보낸 편지다. 박지원은 손수 밑반찬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보내줄 정도로 요리를 잘했다.

“손자를 안아 눕히고 그와 더불어 잠자며, 밤을 함께 지내고 항상 따로 놔두지 않았네.” 묵재 이문건은 손자를 키우며 우리나라 최초의 육아 일기 ‘양아록’(養兒錄)을 썼다. 오희문의 일기 ‘쇄미록’에는 “아침에 아내가 나보고 가사(家事)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동안 둘이 입씨름을 벌였다. 아! 한탄스럽다”는 기록도 보인다.

조선시대는 가부장제 사회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을 확립한 대유학자 퇴계 이황은 ‘살림의 달인’이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부인을 대신해 음식 의복 같은 안살림, 농사와 반찬거리 마련, 노비 관리, 재산 증식, 세금 납부 같은 바깥살림을 거의 도맡았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은 실생활의 기록인 일기나 편지, 개인 문집 등을 토대로 양반가에서 남자들이 집안 살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흔적을 복원한다. 저자인 정창권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조교수는 “조선시대에 집안에서 남녀 간 역할 구분은 뚜렷하지 않았다”면서 “조선 후기엔 성리학이 강화됨으로써 내외의 구별이 엄격해지긴 했지만, 그것은 단면일 뿐 실제로 집안 살림에서 남자의 역할과 비중은 매우 컸다”고 말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 살림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주장은 흥미롭고 신선하다. 다만 책에 나오는 살림하는 남자들이 당시 특수한 사례였는지 보편적인 문화였는지 알 수 없다. 남자들이 가사에 참여했다고 해도 여자들과 비교해 가사 비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저자는 집안 살림을 여자의 역할로 규정하고 남자는 집 밖에서 경제 활동에만 종사하는 문화가 일제시대와 그 후 산업화 시기에 남성 노동력 동원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본다. 가능성 있는 가설이지만 논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의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새 창문을 하나 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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