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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경제 대통령의 시대

강준구 경제부 차장


얼마 전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다시 짰다. ‘손해만 안 보면 되지’ 싶어 예적금에 쌓아두기만 했던 자금이다. 개인형 퇴직연금(IRP)도 다시 불입을 시작했다. 소득공제 받으려고 2004년 입사 직후 가입해 만기(10년)를 채운 뒤 까맣게 잊었던 연금저축보험도 증권사로 이전해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조금씩 넣었다. 직장 생활 17년간 눈길 주지 않았던 주식 투자를 한 지도 1년여쯤 됐다. 회사에서 잘리지만 않으면 언젠가 적당히 집을 사고, 자녀들 적당히 출가시킨 뒤 아내랑 적당히 살겠다는 나의 느슨한 계획이 심대한 오류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제 40대 초반이니 아직 늦지는 않았을 것이란 희망을 붙잡고서.

대기업 직원 정도 아니고선 3중 연금 구조(국민연금·개인연금·퇴직연금)를 제대로 갖춘 사람이 드물다. 집 없는 설움뿐 아니라 앞으로도 집 없을 설움에 ‘영끌’ 재테크에 나선 MZ세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신한금융투자가 MZ세대 계좌를 분석해보니 평균 자산이 262만원인데 이 중 81%를 주식에 넣고 있다고 한다. 집 한 채 말곤 한 푼 수익 없는 은퇴자도 주택 증여·매도 후 자식에게 얹혀살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느닷없이 이런 시기가 온 건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자산 양극화를 가속화했고, 문재인정부 4년 동안 폭등한 부동산 값이 결정타를 먹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웰빙 문화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힐링 문화가 사회 비주류의 콧등을 간질이던 분위기도 이번엔 영 보이지 않는다. 낭만이 사라진, 필사적인 각자도생의 시대다.

문재인정부는 막강한 정책 집행력을 드러냈다. 과거 어느 정부도 이렇게 하고 싶은 걸 다해보진 못했을 것이다. 국가적 불운이지만, 이 가운데 ‘가보지 않은 길’로 행군했던 경제 정책은 지난 4년 새 대체로 실패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2030세대까지 이렇게 계산기 앞으로 몰아세운 정부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를 거쳐 다음 정부는 포스트 민주화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하든 코로나19 이후 경제 정책이 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쇠락 위기로 몰린 600만 자영업자의 구조조정과 극심한 자산 양극화, 외부적으로는 글로벌 공급체인망의 대격변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문제까지 고려해야만 한다. 기민한 외교 감각과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거대 신념에 기반한 일관된 통치 철학도 요구되겠으나 그보다는 개별 사안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이슈 파이팅이 더 시급하다. 적어도 코로나19 파장이 완전히 사라지고 글로벌 경제 질서가 안착할 때까지는 이런 리더십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까지 여야 대선 후보 누구에게서도 이런 면을 찾아보긴 힘들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도정에서 가능성을 보였으나 국정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제 정책 실패의 공동 책임을 벗기 위해선 분발이 더 필요해 보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개인에 대한 기대감은 있으나 정책 능력은 어디서 파악해볼 길이 없다. 국민의힘의 정책 스탠스를 가지고 그저 가늠만 해볼 뿐이다.

우리 근현대사는 신념을 가지고 갈등하던 시기였는데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칼날이 돼 서로를 찌른다. 인심뿐 아니라 체면과 낭만도 곳간에서 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모든 대통령이 비장한 신념을 내세워 집권했으나 모두 비장한 끝을 맞았다. 이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리더십이 보고 싶다. 경제 대통령이 필요한 시대다.

강준구 경제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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