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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무심하고 느슨한 세대론

양민철 이슈&탐사2팀 기자


얼마 전 길을 걷다 ‘7090 라이브 바’라는 간판을 보고 의아했다. 원래 8이란 글자가 있던 자리를 시트지로 덮고 그 위에 9자를 새로 쓴 간판이었다. 1970~80년대 추억의 노래를 7080으로 부르던 것이 어느새 90년대 음악까지 한 세트로 묶고 있었다. 이 가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KBS 가요 프로그램인 ‘새가수’는 70~90년대 명곡을 2021년 감성으로 다시 살릴 가수를 찾는 것이 방송 내용인데, 80년대 록밴드 송골매 멤버이자 ‘7080 콘서트’ 진행자였던 배철수씨와 90년대생 가수 강승윤, 솔라(본명 김용선)를 나란히 심사위원으로 내세웠다.

레트로(복고)가 유행이라지만 70~80년대 음악과 90년대 이후 음악은 확연히 다르다. 평론가들은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를 분기점으로 본다. 당시 기성세대는 ‘저런 노래가 다 있느냐’고 혹평했지만 신세대 반응은 정반대였다. 서태지 음악에 대한 호불호가 세대 차이를 가늠하는 상징으로 쓰일 정도였다. 그런데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두 세대의 음악을 뭉뚱그려 합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무성의한 일이다. 최근 레트로 열풍을 상업적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보다 더 무성의한 세대 구분도 많다. 유행처럼 번지는 ‘MZ세대’ 담론이 대표적이다. MZ세대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로, 80년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한 바구니에 몽땅 담았다. MZ세대론에 의하면 기업 관리자급 직원과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수업 중인 대학 신입생이 모두 같은 세대다. 요즘 SNS에서는 “나도 MZ세대”라며 기뻐하는 80년대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폭등한 집값에 기가 질린 90년대생이 “80년대라도 태어났어야 했다”라고 자조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사회 진출이 몇 년 늦었다는 이유로 내 집 마련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절망감이 담긴 표현인데, MZ세대 내에도 세대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렁뚱땅 묶어 놓고 보는 세대론의 원조는 ‘진보·보수’ 세계관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틀에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나누고 천편일률적으로 연결 짓는 방식이 MZ세대론보다 몇 배는 더 무성의하다. 요즘은 다른 세대의 가치와 기준을 일방적으로 정의해 놓고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윽박지르는 지경까지 이른 듯하다. 지난 4·7 재보선에서 20·30대 야권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방송인 김어준씨는 “2030세대의 공정과 정의는 퇴행적”이라고 일갈했다. 지지 성향이 반대로 나타났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세대론이 지겹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라는 책에서 위안을 얻었다. 89년생 7년차 일간지 기자인 저자는 이념과 세대론으로 규정할 수 없는 MZ세대의 행동 양식을 이렇게 묘사했다. “제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궁금하다고요? 저는 여성 문제를 바라볼 때는 진보적인데 투자나 시장경제에 대한 태도는 합리적 보수에 가까워요. 거대한 정부가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크지만, 코로나19 같은 상황에서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효과적이긴 한 것 같아요. 안보는 확실히 보수 쪽인 것 같고요. 정치인이 불쌍해서 뽑는다고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일부 생략)

대선 정국이 달아오를수록 편 가르기는 기승을 부린다. 정치권은 이미 ‘이대녀(20대 여성)와 이대남(20대 남성)’, ‘586과 MZ세대’ 같은 젠더·세대 갈등 양상을 자신들의 진영으로 포섭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혐오를 부추겨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얄팍한 노림수다. 무심하고 느슨한 세대론은 이런 흑백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특정 계층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리는 속성 탓이다. 지역과 세대, 젠더와 빈부 격차를 무성의하게 취급하지 않는 후보를 뽑고 싶은데, 아직까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양민철 이슈&탐사2팀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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