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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숏컷이 왜, 페미는 왜?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별반 관심이 안 가던 도쿄올림픽에 눈이 가기 시작한 건 양궁 선수 안산의 첫 금메달 도전 경기부터였다. 흔들림 없이 과녁을 노리는 눈동자가 유독 까맣고 티 하나 없이 맑았다. 그 눈 자체가 젊은 선수의 패기와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해졌다. 그런 안산이 쏘는 장면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결국 양궁 사상 첫 3관왕이라는 기록을 완성하고, 절대 안 울 것만 같던 눈에서 눈물을 훔쳐내는 스무 살의 선수가 그저 너무 기특하기만 한 건 당연한 감정의 전개였다. 이 흐름에 다른 논쟁이나 평가가 등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안산의 헤어 스타일인 ‘숏컷’을 거론하는 댓글들이 올라왔다는 기사를 보면서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건 논란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황당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흔한 스타일 중 하나일 뿐인 ‘숏컷이 왜’라는 질문만 잠시 스쳤다. 더구나 안산의 머리는 모자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안산 본인도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인 지난 3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한 누리꾼이 “왜 머리를 자르냐”고 묻자 “그게 편해서”라고 가볍게 답하고 지나갔다. 당시에도 그런 질문이 무례하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굳이 헤어 스타일이 관심이라면 그 정도 문답으로 해결해주면 될 일이라 생각한 것일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숏컷은 끝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숏컷=페미’라는 등식이 성립돼서다. 그의 과거 발언 등에 남성혐오적 표현이 있다는 주장 등이 나오면서 숏컷으로 시작된 트집잡기는 젠더 전쟁으로 비화됐다. 안산은 순식간에 메갈리스트로 저격됐고, 메달을 반납하라는 요구까지 등장했다.

기시감이 확 들었다. 지난 5월 온라인을 달궜던 이른바 손가락 모양 논란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는구나. 당시 일부 기업이나 관공서 포스터 등이 남성 혐오의 상징인 집게 손가락 모양을 이미지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때 역시 처음엔 손가락 모양에 무슨 실체가 있겠느냐며 일부 커뮤니티 내 논란을 끄집어내는 게 더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고 판단해 소극적으로 사안을 다뤘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집중포화를 받은 기업이나 기관은 해당 이미지를 삭제하고 사과하고, 담당자를 경질했다. 고객, 소비자, 민원인이 왕이니 어쩔 수 없었다 넘기기엔 ‘손가락 논쟁’ 여파는 컸다. 그때 역시 손가락 표식이 곧 페미니스트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됐고, 페미니즘 자체를 향한 공격으로 확산됐다.

이번에는 그나마 공격의 대상이 세계적 무대인 올림픽에서 3관왕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써낸 선수이기에 많은 이들이 반격 혹은 방어에 나선 상황이다. “안산 선수를 향한 비난이 도를 넘어섰다”며 자제를 촉구하며 안산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주다. 다행히 올림픽 성적도 좋은 결과를 냈고, 일부 누리꾼들의 커뮤니티 글이나 댓글의 표현 등을 언론이 다뤄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이대로 마무리됐으면 싶었다.

그런데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이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과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에 있다”는 주장을 다시 들고 나왔다. 안산을 비이성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반대한다면서 덧붙인 말이다. 그의 말은 곧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정당하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BBC 방송의 서울 주재 특파원인 로라 비커도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페미니즘은 한국에서 부정적 의미의 단어가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이쯤 되니 ‘언론 탓’을 더 듣더라도,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어졌다. 페미니즘은 무엇을 했기에 ‘일베’처럼 배척할 대상이 됐는가. 페미니즘은 왜 나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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