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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언론 징벌, 위험한 발상과 후유증

이재진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언론 관련 단체들이 연일 반대 성명을 내고 있음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법안이 표방하는 것은 가짜뉴스 피해에 대한 ‘구제’이지만 실제로는 구제보다 ‘규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만일 규제 성격을 갖는 법을 입법하거나 개정하려면 규제 목적이 정당하고 방식이 적정해야 한다. 아울러 대안이 존재하는지, 사회적 필요성이 있는지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충되는 다른 법익과의 형평성을 살펴야 한다. 이런 점을 곰곰이 따져 볼 때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언론과 관련된 손해배상에는 대개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실질적 배상이나 추정적 배상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며 여기에 크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에는 명목상 배상이나 특별 배상을 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들 4가지 배상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배상은 발생한 피해 정도에 따른 금전적 보상의 성격을 갖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 정도가 아닌 ‘악의성’에 대해 처벌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즉 보도에 악의성이 입증되면 그런 방식으로 다시금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형사 처벌에 준하는 효과를 의도하는 규제 방법인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국가들에 있어서도 헌법적으로 보장받는 언론 보도에 이를 적용하는 것에는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남용되거나 언론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고안하게 된다. 공인과 사인의 구분, 현실적 악의 원칙 정립, 진실 입증 책임의 전환, 언론의 공적 역할 고려, 악의라는 추상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통한 입증 등이 그것이다. 미국에서 언론 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원까지 가는 경우는 5~10% 정도인데 그중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성격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언론중재법에 두게 되면 언론 관련 소송이 크게 증가할 것이고 언론중재위원회 업무도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현재까지 어떤 선진 외국의 법률에서도 적용 대상이 불분명한 ‘악의적’ 보도에 대해 일정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비록 개정 목적이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라고 해도 사법적 심리 과정을 통해 신중하게 결정할 사안을 명확한 근거 없이 법으로 정하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무엇보다 헌법 제37조 2항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언론 자유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침해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악의성을 어떻게 입증하며 배상 정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근거도 명확하지 않고, 이를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공익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이지 않다. 따라서 비록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당장 국경 없는 기자회 등 해외에서부터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은 물론이고 언론사나 언론 관련 단체 등에서 바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어쩌면 환영받기 어려운 존재일 수 있다. 부정적 측면에서 보도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언론 자유가 가장 발달한 미국의 경우에도 언론 보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언론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의 공익적 가치 때문이다. 즉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권력 남용과 사회 부정부패를 감시·비판하는 유일한 존재로서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기레기’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추산해서 10억원 내외에까지 이를 수 있는 징벌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재진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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