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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희망의 사람들] 주민들이 배우·스태프 역할 … “마을영화, 국제 축제로 거듭났죠”

지난달 말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2리 신지승 영화감독의 집에서 '끄트머리 마을영화제'가 열리는 날 주민들이 모였다. 시원한 냉콩국수와 수박을 먹고 난 뒤라 꼭 마을 잔칫날 같다. 박성열 할아버지, 박부녀 김원용 손도하 할머니, 김 할머니 사위 이성형씨(왼쪽부터)가 나무의자 뒤에 앉았고 마술도 하는 전대원씨와 칼국수를 준비한 이금란·마명옥씨가 앞에 섰다. 신 감독(맨 앞줄 파란 상의)과 아내 이은경 PD(맨 앞줄 왼쪽 검은 상의) 부부, 붐 마이크를 든 하륵, 2층 테라스에서 슬레이트를 든 하늬, 해먹에 앉은 동네 아이와 구경 온 테라스 민박객 등이 함께하면서 한 편의 영화 장면 같은 풍광이 연출됐다.

저녁 6시가 넘었지만 여름 해는 길어 여전히 날이 환한 마당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기와의 검정과 벽체의 빨강이 영화 세트장 같은 이 집에는 ‘마을극장 DMZ’라는 간판이 붙었다. 이곳 마당에서 지난달 말 ‘끄트머리 마을영화제’가 열려 현장을 찾았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 2리, 비무장지대(DMZ)에 가까운 접경지역 동네가 ‘서화리 영화마을’로 불리게 만든 그 집이었다. ‘마을영화’의 산파인 신지승(59) 영화감독이 가족과 사는 살림집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여기를 거점으로 영화를 제작·편집·상영하고 전시회를 열며 레지던시(작가가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운영한다.

행사 시간이 되자 흰색 주름치마로 멋 부린 박부녀(90) 할머니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김원용(95)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빈 유모차에 의지해 들어서며 환히 웃었다. 속속 주민들이 모였다. 조용한 성격의 손도하(89) 할머니, 산불감시원을 지낸 박성열(81) 할아버지, 김 할머니의 사위 이성형(75)씨, 흥이 많아 잘 웃기는 전대원(74)씨, 칼국수 면을 준비한 이금란(70) 마명옥(69)씨….

마당 앞에 설치된 스크린 뒤로 신지승 감독 가족이 타고 다닌 5t 트럭이 보인다. 영화 촬영 장비를 싣고 차안에서 숙박하며 온가족이 살았던 시절을 잊지 못해 폐차하지 못하고 유물처럼 두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행사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마당 앞에 흰 천으로 만든 대형 스크린이 없었다면 동네 행사로 오인했을 것 같다. 그래도 영화라곤 구경 갈 일이 없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날은 특별했다. 게다가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가 상연되는 날 아닌가.

인제에는 군부대만 10여개 있다. 박광주 서화리 이장은 “주민들은 농사도 짓지만 휴가나 외박 나온 군인을 상대로 음식·숙박업에 종사한다”며 “한때는 120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식당 다방 모텔 노래방 등 상가가 70곳 성업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근년 들어 ‘장병 출타가능 지역범위’가 완화돼 속초까지 외박이 가능해지면서 이곳 상권은 급격히 약화됐다.

‘평화생태 탐방’으로 출구를 모색하던 이 마을이 뜬금없이 ‘서화리 영화 마을’로 통하게 된 것은 신 감독네가 귀촌하면서부터다. 그가 아내 이은경(52) PD와 쌍둥이 남매 하륵·하늬(11)와 함께 서화리에 온 건 2017년 겨울이다. 그야말로 흘러들어왔다. 미국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처럼 차박(차안에서 숙박)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트럭에 촬영장비를 싣고 왔다.

신지승 감독의 아들 하륵군이 집에서 키우는 닭으로 닭쇼를 보여주고 있다.

졸지에 ‘하우스리스’(집이 없는 사람들)가 된 사연이 있다. 신 감독은 독립영화를 찍다 2000년부터 ‘마을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영화판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한 후 경기도 양평에 정착했는데, 주민과 친해지며 자연스레 주민이 출연하는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 등으로 만든 시나리오로 마을 주민이 직접 배우가 돼 찍는 영화야말로 상업 영화, 예술 영화가 갖지 못하는 진솔함이 있다”고 신 감독은 말했다. ‘마을마다 마을영화’가 그의 모토다. 제주에서 경남 창녕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마을영화를 제작했다. 그런데 2017년 봄, 집을 비운 사이 양평 자택이 화재로 전소됐다. 이때부터는 꼼짝없는 ‘노매드’(유목민)가 됐다. 주차가 가능한 공영 주차장을 찾아다니며 전전하던 이들은 속초 강릉 등 강원도로 향했고 겨울쯤 인제까지 온 것이다.

정이 많은 주민들은 영화를 찍는 동안 경로당에서 신 감독 가족과 함께 밥을 먹었다. 두 달이 지났을까. 한 주민이 빈집으로 있던 서화리식 다세대주택에 ‘외상’으로 살라고 했다. 서화리 주민이 됐다. 화재 사고 이후 서화리로 흘러들어온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길 위의 빛들’은 2019년 경기도가 주최하는 DMZ국제다큐멘터리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신 감독과 서화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마을에 정착한 이후 ‘타란튤라의 춤바람’ ‘살아가는 기적’ ‘천사는 쏜살같이 여린 자를 구하라’ 등 3편의 마을영화를 찍었다. 경로당에 나오는 어르신들이 배우로 총출동했다. ‘타란튤라의 춤바람’에선 독거미(타란튤라)에 물리면 춤을 춘다는 시나리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영화 속에서 한판 춤을 췄다. 주민들은 붐 마이크를 쥐고 슬레이트를 치는 등 스태프 노릇도 했다.

“영화배우가 된다는 거 꿈이라도 꿨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되긴 되네요.”

“잠이 안와! 너무 좋아서.”

이 PD는 마을 주민의 농사 및 음식 문화, 접경지역 일상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보여주는 ‘인제곰TV’를 운영한다. 마을영화 제작과정 홍보 영상을 보니 주민들이 감격해 이런 말을 하는 게 눈에 띈다. NG가 나면 현장에선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다. 주민들은 신 감독이 대강의 상황만 제시하면 알아서 ‘애드리브’로 대사를 친다.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포스터. 외국에는 끄트머리 대신에 '궁지에 몰린'을 뜻하는 철학용어인 아포리아를 써서 소개한다.

영화라곤 천막극장 구경이 전부였을 어르신들은 이렇게 마을영화의 배우가 됐고 그걸 마을영화제에서 본다. 이건 새로운 문화운동이다. 신 감독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교보환경상 생명문화부문대상을 받았다. 2018년부터 마을에서 시작한 ‘끄트머리 마을영화제’는 2020년부터 ‘끄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로 확대개편됐다. 올해 70개국에서 600여편의 영화가 접수됐다. 12월 본행사에 앞서 봄부터 계절별로 프리뷰처럼 영화를 소개한다.

후원: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인제=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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