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자 대출로 사채 벗어난 청년이 무이자 저축… 선한 ‘무이자 은행’

희망주는 희년은행 김재광 센터장

김재광 희년은행 센터장이 6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무이자 은행’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30대 청년 A씨는 5년 전 불법 사채로 고통받고 있었다. 500만원 정도를 빌렸는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손 쓸 수가 없었다. 그가 기적처럼 빚의 굴레에서 벗어난 건 ‘희년은행’을 만나면서다. 희년은행은 사채업자와 빚을 청산한 후 청년에게 무이자 대출로 전환해줬다. A씨는 1년간 성실히 원금을 상환했고 이후 희년은행의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자신처럼 불법 금융에 고통받고 있을 또 다른 청년을 위해 자본금 마련에 참여한 것이다.

A씨 사례는 희년은행이 추구하는 ‘관계 금융’을 잘 보여준다. ‘무이자 대출’의 혜택을 받은 청년이 기꺼이 ‘무이자 저축’에 참여하고 이는 또 다른 ‘무이자 대출’을 가능케 한다. 선순환하는 대출자와 차주 간 신뢰를 바탕으로 무이자 저축·대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6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김재광 희년은행 센터장을 만나 ‘무이자 은행’ 이야기를 들었다.

2016년 설립된 희년은행은 조합원들이 저축한 기금으로 조합원들에게 무이자 대출해주는 스웨덴 협동조합은행 ‘야크(JAK)은행’을 모델로 한다. 현재까지 591명이 희년은행 조합에 가입해 5억5300만원을 모았다. 희년은행은 출자금으로 고금리 사채, 주거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만 39세 미만 청년 70여명에게 4억여원을 대출해줬다.

희년은행은 모 단체 ‘희년함께’가 춘천 예수촌교회에서 고금리 부채로 고통받던 한 청년의 문제 해결에 참여하면서 탄생했다. 희년함께는 성경적 토지 정의를 표방해 1982년 설립된 단체다. 당시 교인들은 청년의 자활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덜어줄 방법으로 무이자 전환 대출을 제시했고 대출 관리를 희년함께에 맡겼다. 김 센터장은 “이자로 허덕이던 청년이 무이자 대출 전환 후 성실하게 빚을 갚아나가는 모습을 접하면서 선한 의지만 모이면 청년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발상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5년간 희년은행의 대출 시스템은 정교해졌다. 무이자 대출만 해주는 게 아니라 청년의 지속 가능한 경제생활을 위해 금융 상담, 교육을 병행한다. 김 센터장은 “우리가 기대하는 건 빚 문제로 무너진 청년들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이라며 “일시적으로 빚을 털어버리는 것만으론 금융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빚 부담을 줄이면서 소비습관, 재정관리 습관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희년은행에서 일하는 금융 전문가들은 청년의 지출 패턴 등을 파악하고 빚, 소득을 고려해 한 달 지출 비용, 빚 상환금, 저축액 등을 짜준다. 이후 최소 3개월간 함께 가계부를 쓰면서 올바른 소비 습관이 형성되도록 돕는다.

김 센터장이 지난해 희년은행의 스물여덟 번째 단체조합원 ‘함께주택협동조합’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희년은행 제공

김 센터장이 그간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청년들이 금융 관련 정보를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금융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왜 재무, 소득 관리를 해야 하는지부터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로 소득 고리가 끊긴 청년들이 쉽게 고금리 사채에 손을 댄다고 우려했다. 희년은행은 무조건 대출을 해주기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저신용자 대출 등 적합한 정책금융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한다.

희년은행과 청년이 오랜 기간 얼굴을 맞대고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쌓인다고 김 센터장은 설명했다. 이 신뢰 관계는 청년이 빚 상환 후 여유가 생겼을 때 희년은행 조합에 가입하는 원동력이 된다. 김 센터장은 “조합원 가입이 의무 조항이 아닌데도 ‘고통스러울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조합원들처럼 나도 또 다른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는 청년이 많다”고 전했다.

다만 조합원에게 일방적으로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김 센터장은 강조했다. 희년은행 조합원은 매달 5000원 이상을 무이자 저축해야 하지만, 향후 원할 때 자신이 저축한 만큼의 금액을 무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다. 김 센터장은 “다른 청년을 돕는 동시에 내가 필요할 때 무이자로 대출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조합원들이 ‘윈윈’할 수 있는 ‘관계 금융’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5년 전 희년은행의 도움을 받았던 청년 A씨의 경우에도 4년간 조합원으로서 저축한 후 최근 결혼 자금을 위해 저축금액의 일정 비율을 무이자 대출받았다고 한다.

희년은행에서 활동하는 금융 전문가가 충남 공주시 지역자활센터에서 기초 재무관리 수업을 하는 모습. 희년은행 제공

더 나아가 희년은행 조합원들은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금융 분야 외에서도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자신의 재능을 다른 조합원에게 나눠주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김 센터장은 말했다. 그는 “스웨덴 야크은행도 조합원들이 만든 동아리가 수백 개에 이를 정도로 끈끈한 조직”이라며 “희년은행도 주거복지센터, 진로 상담소 등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이 도움이 필요한 청년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희년은행은 향후 교회와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청년을 잘 도우려면 재무 습관 형성부터 구직 활동까지 삶 전반을 함께해야 하는데 우리가 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청년이 몸담고 있는 준거집단은 결국 교회다. 도움이 필요한 청년을 교회가 찾아내고 희년은행과 협력해 지원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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