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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밥상+머리] 쌈 싸먹기 좋은 때


여름에 안 먹으면 서운한 음식 중 하나가 강된장을 올린 호박잎쌈이다. 김 오른 찜기에 호박잎을 찌는 건 아주 간단한 과정이지만, 자칫하다가는 너무 물러버리거나 반대로 거슬거슬한 쌈을 먹게 될 수도 있다. 2~3분쯤 뚜껑을 닫고 찌다가 한 번 호박잎을 뒤집어 상태를 보고 2~3분가량 더 찐 후 불을 끄고 살짝 뜸을 들이면 된다. 강된장은 다진 마늘과 양파를 볶다가 된장과 약간의 고추장을 넣어 다시마육수나 물을 부어 바글바글 졸이듯 끓인다. 애호박과 버섯 같은 냉장고 속 자투리 야채를 썰어 넣고 으깬 두부와 멸치 등을 추가해 푸짐하게 만들어 놓으면 몇 끼는 두고 먹을 수 있다.

뚝배기에 강된장을 끓이다가 일전에 친구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딸이 묻더란다. “엄마, 나는 성공한 사람은 못 될 것 같은데 괜찮아?” 친구 대답은 이랬다. “그럼! 누가 너더러 성공하래? 성공할 필요 없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돼.” 친구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하며 농담 반 진단 반 한마디 더 얹어주었다. “애면글면 너무 열심히 살 필요도 없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도 있잖아.”

성공이라는 말은 목적하는 바를 이룬다는 뜻이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이름을 널리 떨친다는 출세의 의미가 아니다.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일반인들보다 못한 자들이 흔한 세상에 그깟 출세쯤이야. 내 삶의 목적이 방랑하는 삶이거나 동화되는 삶, 감사하는 삶이라면 또 어떠랴. 20세기적 성공 개념은 폐기되거나 적어도 올바른 제 뜻을 찾아야 한다.

우리 사전에서 없었으면 더 좋았을 단어를 꼽으라면 나는 종종 성공과 짝을 이루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꼽고 싶다. 이 두 단어야말로 광고나 드라마, 언론이 만들어낸 근현대신화 같은 건 아닐까? 평생 성공이나 행복을 좇는 대신 우리는 다만 평온함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광고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것만 있으면 더 행복해질 거야”라고 되뇌며 성공과 행복을 동일시했다.

다행히 작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오랫동안 성공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 한 자동차 브랜드는 올해 초 ‘착한 사람이 되는 것’ ‘환경을 생각하는 용기를 내는 것’ ‘유기견을 입양하는 것’ 등을 성공과 연결하는 광고를 내놓았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남자’ ‘큰 남자의 여유’ 같은 카피를 썼던 예전 광고와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성공한 사람을 꼭 집어 ‘남자’라고 표현했던 것에도 격세지감을).

좋아하는 건 좋아하면서 사는 게 좌우명이라는 안산 선수, 활시위를 당겨 내가 쏜 화살이고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며 패배해도 괜찮다는 김우진 선수. 이들의 인터뷰를 들으며, 강된장을 올려 호박잎쌈을 먹는다. 호박잎, 그까짓 것 좀 무르거나 거슬거슬하게 쪄도 괜찮다. 요리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우리 선수들 인터뷰 보다가 나도 제때 불 끄는 걸 잊었다. 무엇보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과 행복, 그까짓 것 한입에 쌈 싸먹어 버려도 좋을 때가 됐다.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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