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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한 소설가가 말하는 ‘부장급 윤리’

김남중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소설가 이기호씨가 연일 대한민국예술원 개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학잡지에 예술원 개혁을 위한 보고서 형식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예술원법 개정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최근엔 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 예술원 회원에 대한 정액수당 지급 문제점을 적시한 민원을 제기했다.

이 작가는 연간 32억원이 넘는 문화예술 예산이 예술원에 들어가는데 대부분이 100명 회원에게 지급하는 월 180만원의 수당으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이를 청년예술가 지원 등에 돌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원로로 구성되는 예술원 회원들에 대한 특별예우는 그동안 몇 차례 논란이 됐다. 그때마다 예술원과 이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무대응으로 버텼다. 이 작가는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문인들의 뜻을 모으는 작업에 들어간다”며 “지치지 않고 계속 문제 제기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 작가의 예술원 개혁 운동은 문단 내부 문제에 대한 고발이고, 선배 문인들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 작가는 이런 일을 문인단체나 동료들의 지원 없이 혼자 시작했다. 소설가가 작품으로 쓴 문제를 직접 해결하러 나섰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총대 메는 거 몹시 싫어하고요, 앞에 나서는 건 더더욱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라는 이 작가는 어쩌다 예술원 개혁 운동의 전면에, 그것도 단신으로 나서게 됐을까. 궁금해하다가 그가 사용한 ‘부장급 소설가’라는 말에 주목하게 됐다. 이번 일을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그는 자신을 “문단 경력은 아직 30년이 안 된, 22년 차 작가”라며 “말하자면 ‘부장급 소설가’”라고 설명했다.

부장급이라면 어떤 회사나 조직에서 임원급과 직원급 사이의 자리다. 조직 생활 경력이 20년 이상 되고 나이로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 걸쳐 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기반을 갖춘 사람들이다. 올해 49세로 대학 교수인 이 작가는 자신을 부장급으로 인식하면서 부장급이라는 자리에 특별한 윤리와 책임감을 부여하는 듯하다. “나처럼 ‘부장급 소설가’들이 더 나서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같은 말에서도 그런 감각이 묻어난다. 기성세대의 편을 들 것이냐 후배 세대의 편을 들 것이냐, 기득권 속으로 들어갈 것이냐 기득권 개혁으로 나갈 것이냐, 자신이 보유한 경험과 자원을 변화에 쓸 것이냐 현상 유지에 쓸 것이냐, 부장급이란 이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가는 부장급들이 그동안 문제를 회피하고 개혁을 외면해왔다고 본다. 그는 “그동안 많은 예술원 비판이 있었지만 예술원은 왜 변함이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래서 ‘부장급 소설가’ ‘부장급 시인’ ‘부장급 평론가’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부장급들이 문제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면 변화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작가는 “거기(예술원) 소설 쪽 선생님들은 내가 다 존경하는 분들이고 이런저런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도 많다”면서 “그럼에도 이런 생각(예술원법 개정 운동)까지 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지점 때문에 지금까지 예술원이라는 이상한 기관이 존립하고 있었구나 하는 인식 때문”이라고 썼다. 그가 말한 ‘선생님’과 ‘인연’이라는 ‘지점’에서 발이 걸려 주저앉아 있는 이들이 바로 부장급들이다.

이 작가는 “인연도 있는데, 소설 쓰기도 바쁜데…. 기성세대가 되는 비밀은 어쩌면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자신은 “부장으로서 할 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만년 부장급으로 산다고 해도, 부장이 어딘가!”하면서.

김남중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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