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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유럽의 북한

천지우 논설위원


“우리는 어떤 나라보다도 스포츠 부문에 많은 지원을 한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메달 따는 걸 국가와 국민이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완전히 잊어버렸다.”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선수들이 배가 고프지 않아 경기에서 못 이긴다고도 했다. 도쿄올림픽에 보낸 선수단이 부진하다고 대통령이 직접 질책한 것이다. 이후 벨라루스 선수단은 금메달과 동메달을 하나씩 땄다.

대통령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향해 돈값을 하라고 소리칠 정도로 벨라루스의 정치·사회 분위기는 매우 억압적이다. 급기야 올림픽에 출전한 벨라루스 선수가 제3국으로 망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여자 육상선수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는 코치진의 갑작스러운 계주 출전 명령에 항의했다가 지난 1일 강제로 귀국 항공편에 태워질 뻔했다. 공항에서 빠져 나와 주일 폴란드대사관으로 피신했던 그는 4일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지난해 루카셴코의 6연임 성공으로 귀결된 대선이 부정선거라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성명에 참여했던 치마노우스카야는 자신이 귀국하면 국가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체포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일에는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해온 벨라루스 반체제 인사가 자택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위장한 타살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루카셴코 정권은 지난 5월엔 여객기 납치 사건으로 세계를 경악케 했다. 자국 반체제 인사를 체포하려고 그리스에서 리투아니아로 향하던 아일랜드 여객기를 벨라루스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것이다. 미그-29 전투기까지 동원한 하이재킹이었다. 이 사건과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각종 제재를 가해도 루카셴코 정권은 끄떡도 않고 있다.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지난 6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민주화 시위와 독립언론에 대한 루카셴코의 탄압이 벨라루스를 ‘유럽의 북한’으로 만들고 있다”고 증언했다.

천지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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