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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정치를 여자배구팀처럼 할 수 있다면

하윤해 정치부 차장


도쿄올림픽 4강에 오른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을 ‘김연경의 팀’으로 부르는 것은 정작 김연경에게 가장 실례가 되는 표현 같다. 김연경도 자신을 낮추고 ‘하나의 팀’을 앞세운다. ‘팀 코리아’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팀이 지금의 여자배구 대표팀이다. 2002년 월드컵의 4강 신화가 ‘광장의 함성’이었다면, 이번 여자배구팀의 4강 진출은 답답한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스포츠를 보는 우리 국민의 눈높이는 달라졌다. 은메달을 따도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는 선수들은 사라졌다.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7위를 기록했지만 150m까지 1위로 헤엄쳤던 황선우의 역영에 찬사를 보냈고,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4위에 오른 우상혁의 비상에 환호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에 감동을 받는 것도 4강이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은 하나가 된 선수들의 모습에 힘을 얻었다. 162㎡(49평) 넓이의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은 몸을 던졌다. 코트 밖의 선수들이 서로 손을 잡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팀의 리더 김연경의 입에선 ‘하나’라는 말만 나온다. 김연경은 일본을 이긴 다음 날 자신의 SNS에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였다’는 글을 올렸다. 터키를 물리치고 나선 “하나의 팀이 돼 4강 무대를 밟아 기쁘다”고 말했다.

33살의 김연경은 도쿄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이미 선언했다. 선수들은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다짐했다고 한다. 지난 4월 결혼한 양효진은 신혼 생활을 반납했다. 김희진은 두 달 전 무릎 수술을 받고서도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다. 학교폭력 논란을 빚은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을 빼고 거둔 성과라 의미가 더 크다.

김연경은 위기 상황에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리더다운 행동이었다. 선수들도 자기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했다. 실수가 나와도 동료를 감쌌다. 잘 나갈 수밖에 없는 조직의 모습이었다. 8강전에서 터키의 장신 선수들이 스파이크를 내리꽂아도 우리 선수들의 눈매에서 기죽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이 저력 있는 국가라는 자신감을 모처럼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나의 팀’을 응원하는 우리 국민이 둘로 갈라져 있는 것은 뼈아픈 역설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너무나 크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코로나19는 다시 확산되고,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부동산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경제는 장담할 수 없다. 남북 관계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사방이 악재로 가득하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다독이면서 한국을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만들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한국을 위해 몸을 던지는 정치인도 찾기 힘들다. 여야 대권 주자들 모두 경선을 의식해 ‘자기 편’ 듣기 좋은 말만 쏟아낸다. 국민 통합과 공정 사회는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후보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치고 있다. 쥴리 벽화, 여배우 논란 등 듣기 민망한 얘기들만 쏟아진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치사한 공격이 난무하고, 이런 뉴스가 유튜브와 SNS에 넘쳐난다. 국민 통합은 바라지도 않고, 국론 분열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국 정치가 여자배구팀이 보여줬던 헌신과 희생을 흉내 내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한국팀은 6일 브라질과 준결승 경기를 갖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여자배구팀이 전한 감동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하윤해 정치부 차장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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