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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이상한 한·미 연합훈련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한·미 연합훈련이 소멸해간다. 북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기본 목표를 상실한 채 국내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도 훼방이 본격화됐다. 북한이 의도한 바다. 북한이 남북 관계를 개선한다는 순수한 의도로 통신선 복원(미국 고위 당국자 표현을 빌리면 “안 받던 전화를 받기 시작한 것”)을 한 것이 아님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스스로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7일 북한이 남북 통신선 복원을 먼저 요청해 왔다고 알린 바 있다. 이 시기 한·미는 연합훈련을 위해 미국 요원 입국이 시작됐고, 8월 초 양국 군 지휘관이 훈련 준비를 최종 점검하며, 8월 10일부터 위기관리 참모훈련을 시작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내세운 대남 관계 개선을 위한 핵심 조건 중 하나다. 지난 3월 한·미 연합훈련이 시행되자 김여정은 “태생적 바보” “미친개” “떼떼(말더듬이)”와 같이 거친 표현으로 비판했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와 여당은 애써 연합훈련 문제를 외면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포함한 온갖 장밋빛 청사진만 남발했다. 그러다가 김여정이 8월 2일 담화를 통해 훈련 중단을 노골적으로 요구하자 여당 대표만 제외하고 하명에 따르기 바쁘다.

북한이 통신선 복원과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것은 사실상 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연합훈련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중단을 요구함으로써 한·미 간 이견을 확장하고 한·미·일 협력 기조를 흔들려 한다. 나아가 향후 대남 공세 재개를 위한 명분 쌓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선의의 조치를 취했으나 한·미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인 연합훈련을 강행했으므로 이후 모든 북한의 행동은 정당화된다는 너무나도 익숙한 논리다. 여기에 중국도 끼어들었다. 8월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한·미 연합훈련을 “현재의 형세하에서 건설성을 결여했다”고 비판하고 “대북 제재 완화”도 요구했다.

미국은 매우 불편하다. 한·미동맹 관계를 고려해 한국 정부와 여당이 요구하는 훈련 중단 문제에 절제된 언어로 대응하지만 속마음은 편치 않다. 지난달 2일 취임한 폴 라카메라 주한 미군사령관은 “정기적 훈련은 연합방위 태세 구축에 필수적”이라면서 연기 주장에 난색을 표명한 바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란 핵 합의 문제와도 연계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새로운 요구를 강압하며 핵 합의 복구를 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만 유화책을 펼치면 국내 정치적 어려움을 안게 된다. 결정적으로 연합훈련을 취소하더라도 북한이 핵 협상장에 복귀할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특정 조건을 내걸고 대화에 나서는 행태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한 상태에서 중국이 훈련 중지를 요구하는 것도 부담이다.

종합할 때 지금 형세는 북한과 중국이 연합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것에 한국 정부와 여당 의원이 가세하는 모양새다. 훈련이 사실상 시작됐음에도 방어훈련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히 협의하라”고 지시한 것 자체가 훈련을 부정하는 행위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정무적 판단을 배제하고 대비 태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국방부가 “외교적 노력 지원” 운운하며 사실상 훈련 취소에 동조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 혼자 한국 방어를 위한 훈련이 소멸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당사자인 한국은 위협을 부과하는 주체인 북한에 호응하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다. 할 말이 없다.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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