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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지금 미국은] “월세 못낸다고 내쫓다니…” 퇴거 유예 연장시킨 초선의 분투기

코리 부시(왼쪽) 미국 하원 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서로 포옹하고 있다. 워런 의원은 이날 만료된 임차인 퇴거 유예 조치 연장을 요구하며 의사당 밖에서 노숙 투쟁을 하고 있는 부시 의원을 응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연방의회가 전반기 회기를 마감했다. 동료 의원들이 여름휴가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막 탑승했을 때였다. 빈민들이 위기에 봉착한 것과 관련해 미주리주 출신의 코리 부시(간호원노조활동가 출신의 흑인 여성) 의원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취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집세를 내지 못하는 월세살이 빈민들을 집주인이 강제로 퇴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제퇴거금지’ 연장 조치를 의회가 처리하지 못한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뙤약볕이 쏟아지는 연방의회 의사당 계단에서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시위를 감행했다. 침낭과 의자도 없이 맨몸으로 낮과 밤을 이어서 무기한 철야 농성을 벌이며 진보적 반란을 일으켰다.

연방의회 의사당 앞 시위는 눕지도 기대지도 못하는 계단에서 서든지 똑바로 앉든지 해야만 하기에 고통의 농성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한여름의 철야 농성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 의원의 의사당 앞 농성 소식을 접한 밀레니얼 세대의 활동가들 백수십 명이 순식간에 시위에 가담했다. 소나기와 뙤약볕을 맞으며 벌이는 농성장으로 민주당 진보정치 결사체인 스쿼드(Squad·행동을 같이하는 6명의 진보 성향 하원의원) 멤버들이 달려왔다. 뉴욕에서 10선의 거물을 무너뜨린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를 비롯해 매사추세츠의 아야나 프레슬리, 미네소타의 일한 오마르, 뉴욕의 자말 보먼, 미시간의 러시다 털리브, 그리고 LA 한인타운이 지역구인 지미 고메즈 의원이 가세했다.

이튿날에는 실라 잭슨 리, 신 워터스 등 진보계 하원의원들이 지역구로 돌아가던 길을 멈추고 농성장을 찾았다. 목요일에 시작한 시위가 주말로 접어들면서 진보적인 시민단체들도 몰려왔다. 노동가족당(Working Families Party)과 가난한사람들운동(Poor People’s Campaign) 소속원들이 가세했다. 한국계 시민단체인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를 비롯한 워싱턴 소재 풀뿌리 시민단체들도 참가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엔 버니 샌더스, 리사 워렌, 에드 마키 상원의원, 그리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같은 거물급들이 농성 현장에 합류했고 이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우리가 강제퇴거금지안을 처리할 만큼 표를 얻지 못했다”며 공화당의 집단적인 반대에 부딪혀서 부결된 사안이고 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렸다. 드디어 백악관이 응답했다. 농성을 시작한 지 5일 만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강제퇴거금지 조치를 연장할 것이라고 하면서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관련 사항에 대한 지원금을 집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월세를 내지 못해서 홈리스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수십만 가정을 가까스로 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가 미국 대도시를 강력하게 할퀴었다. 뉴욕과 LA에선 월세로 살아가는 일일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집주인의 강제퇴거명령을 금지시켰다. 9월로 접어들면서 CDC가 전국적으로 12월 31일까지 강제퇴거를 금지할 것을 명령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이 조치가 3월 31일까지 연장된 데 이어 7월 31일까지 대통령 명령으로 다시 연장되자 사법부(극보수주의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가 이러한 행정부의 명령이 위헌 소지가 있으니 의회가 나서서 법제화할 것을 촉구하면서 의회로 공을 넘겼다. 회기가 끝나기 직전 펠로시 하원의장이 이 강제퇴거금지 연장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공화당의 집단적인 반대로 부결됐다. 이에 부시 의원의 목숨을 건 농성을 본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법부를 설득했고, 결국 CDC가 강제퇴거금지 명령 연장을 발표한 것이다.

부시 의원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초선 연방하원의원이다. 45살의 흑인 여성으로 지난해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연방하원에 도전할 만큼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미주리주의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인종차별철폐운동)을 주도하면서부터다. 그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2014년 8월 발생한 미주리주 퍼거슨 사태 이후 시작됐다. 간호사로 일할 때인 2015년, 18살의 흑인 청년을 총으로 쏴서 죽였음에도 기소되지 않은 백인 경찰을 보면서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 5월 그는 하원 감독개혁위원회에서 ‘인종과 빈곤’ 문제와 관련해 연방의원 자격으로 흑인 여성으로서 출산 경험을 증언해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흑인과 흑인의 아기들은 의사들이 우리의 고통을 믿지 않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 나간다”고 말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요? 의사들은 흑인을 엄마라고 하지 않고 출산인이라고 부르는 것을요…”라는 증언이 귀에 생생하다. 그는 두 아이의 엄마다. 20대 초반인 2001년에 그와 그의 남편은 집을 잃은 상태에서 14개월 동안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20대와 30대에 그가 겪어야 했던 홈리스 경험이 지금 수백만명의 빈곤한 미국인들을 강력하게 대변하도록 하고 있다. 부시 의원은 선출직 정치인이 된 자신의 역할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시민사회의 빈민층을 대변하겠다는 선거 때의 공약에 충실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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