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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홍남기 부총리의 ‘남 탓’

고세욱 경제부장


지난 주말 ‘2021년 서울아파트, 대폭락이 시작된다’라는 책을 읽었다. 현시점에서 제목만 봐도 실소를 지을 사람이 적잖을 듯싶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이 책은 ‘올 4월까지 서울 부동산 가격이 고점을 찍고 하강하면서 8년간 조정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400개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를 분석하는 등 각종 통계와 역대 부동산 주기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다.

실상은 어떤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 6월 10억1417만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10억원을 넘어섰다. 8월 첫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1년8개월여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저자를 비웃자는 게 아니다. 책에서 부동산의 비정상적 폭등세를 경고한 부분은 기자도 공감한다. 학문의 자유 차원에서 폭락론에 딴죽 걸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정책에 무한 책임을 지는 정부가 부동산 실상을 외면한 채 폭락론에 치우쳐 남 탓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난달 2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부동산 담화가 대표적이다. 요약하면 ‘외환위기 이후 추락한 서울 아파트값처럼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것이니 섣불리 매수하지 말라’다.

4년여간 26차례나 대책을 세우고도 집값 급등을 초래한 정부가 할 소리는 아니다. 폭락론이 먹히지 않는 것은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 불신 때문이란 것을 정말 모르나. 홍 부총리는 외환위기 이후 서울 아파트값이 18% 떨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약 18.5% 올랐다. 1년 만에 홍 부총리가 언급한 조정 폭보다 가격이 더 많이 뜀으로써 영끌 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을 되레 입증해준 격이다.

홍 부총리의 입담은 부동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난 3일 농정 당국에 “7000원대에 정체된 달걀 가격이 조속히 6000원대로 인하될 수 있도록 특단의 각오로 대응해 달라”고 주문했다. 계란 가격의 고공행진은 지난해 겨울부터 올 초까지 조류인플루엔자(AI)로 산란계 약 1700만 마리를 살처분한 여파가 컸다. 공급은 부족한데 코로나19에 따른 집콕 영향으로 수요는 늘어나면서 빚어진 일이다.

경제 사령탑이 달걀값을 1000원 내리라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동안의 정부 입장하고도 어긋난다. 정부는 기저효과 등을 이유로 하반기부터 농축수산물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누누이 얘기해 왔다. 살처분하던 방식을 바꾼 게 고작 두 달여 전이었다. 그러고선 이제 와서 달걀값을 떨어뜨리라고 닦달한다. 관계기관 합동점검반이 생산·유통 과정을 살핀다고도 한다. 안이한 상황 판단과 늑장 대응에 대한 책임을 슬그머니 도소매상의 담합 등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과거 정부도 정책 실패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현 정부는 중증 수준이다. 고용참사는 날씨 탓, 경제부진은 대외여건 탓, 코로나 확산은 2030 탓 등 끝이 없다. 문제는 대통령, 여당 인사들이 남 탓을 하더라도 민생과 직결된 경제부처만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덩달아 부화뇌동한다는 점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부동산값 폭등을 ‘전 정권 탓’으로 돌렸다. 그는 박근혜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으로 일하며 정책 기조의 일익을 담당했다. 아무리 현 상황이 꼬였다 해도 전 정권 탓을 쉽게 해서는 안 되는 이다.

현 정부의 남발로 ‘남 탓=무능’으로 각인됐다. 데카르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게 잘못”이라 했다는데 선거 공학에 찌든 정치인이 아닌 미래세대의 안위도 챙겨야 할 경제 수장은 달라야 한다. ‘남 탓이오’가 아닌 ‘내 탓이오’가 경제 정책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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