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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콘텍스트의 시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편집자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인 하야미즈 겐로는 일본에서 현대의 난독(亂讀) 제왕으로는 ‘센야센사쓰’(천야천책·千夜千冊)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마쓰오카 세이고와 장서를 부채질하는 독서 책을 몇 권이나 써낸 논픽션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쌍벽을 이룬다고 했다.

다치바나의 책들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마쓰오카는 2000년 2월 23일부터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에 날마다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을 올렸다. 처음에 그는 같은 저자의 책은 한 권 이상 다루지 않고, 같은 출판사와 같은 장르의 책도 연속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가 위암에 걸렸을 때는 이 일을 잠시 쉬었으나 수술 후 요양을 끝내고는 다시 시작했다. 그가 스스로 감옥에 갇혀 이뤄낸 고행의 산물인 센야센사쓰에는 이 글을 쓸 때쯤 1778번째 밤에 올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지금은 날마다 글을 올리지는 않지만 한 편의 글에는 수십여 도판을 활용해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도록 배려한 편집이 이뤄져 있다. 언어의 장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글은 순차적으로 자동번역이 저절로 이뤄지는데 원문과 한국어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읽을 수 있다. 한국어뿐만이 아니다. 100여개 이상의 언어가 가능하니 세계의 모든 언어로 읽을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마쓰오카는 청년 시절에 광고대리점에서 일하면서 두 회사나 두 제품 사이의 ‘어떠한 관계’, 즉 한 쌍으로 묶어 광고를 수주한 경험을 통해 어떤 기업이나 상품은 모두 ‘새로운 관계의 상대를 갖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모든 사건(시뮬라크르)에는 의미가 발생하는데 그 의미는 하나의 실로 꿸 수 있다고 했다. 마쓰오카는 현실 사회와 경제에는 모든 사건에 부여되는 의미가 자유롭게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어떤 영역의 어떠한 사물과 사정에도 적합한 ‘의미 확장 방법’을 생각해 그 방법을 조금씩 형태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에디팅 프로세스’라고 말할 만한 의미의 변용 과정이 언제나 다이내믹하게, 또한 분류와 영역을 넘어서 관련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편집공학’이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저서 ‘지(知)의 편집공학’(넥서스)과 ‘지식의 편집’(이학사)에 잘 정리돼 있다. 그의 편집공학은 뇌, 미디어, 컴퓨터, 말, 몸짓, 이미지, 음악, 오락, 광고 등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정보 편집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형식적인 정보 처리’가 아닌 ‘의미적인 정보 편집 과정’을 통해 연구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의 세계관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돼 가는지를 전망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텍스트보다 콘텍스트를 중시한다. 콘텍스트는 텍스트의 맥락을 해석하는 것이다. 고맥락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해서 하이콘텍스트라고도 한다. 텍스트의 맥락을 제대로 짚어준 글에 우리는 열광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계층성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해 대중은 꿈보다 해몽을 즐긴다고 볼 수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지금, 유튜브에서는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개인이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게 된다. 텍스트의 가치를 제대로 해석해주는, ‘센야센사쓰’ 블로그 같은 글들을 열심히 읽는 것도 스스로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전엔 책이 그런 역할을 했다. 지금은? 수많은 책이 누군가의 가치판단을 받지 못해 서점 서가의 냄새도 맡아보지 못하고 폐지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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