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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칼럼] 우상혁의 패기, 바일스의 용기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 우상혁
올림픽 4위라는 대단한 성과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에 감동

우리 젊은 선수들 발랄한 도전
유쾌하고 쿨한 모습에 찬사

'체조 여제'의 용기 있는 기권
국가 영웅보다 개인 행복 중요
인생 도전하는 모든 이들 응원

멀리 보이는 높이뛰기 바는 2m33.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한 높이,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거의 비어있는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관객석을 향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박수를 유도했다. 열렬한 응원 박수는 없었지만 우상혁(25)은 힘껏 달렸다. 가뿐하게 날아올라 성공. 그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찼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국 신기록 도전이다. 도움닫기 끝에 하늘로 날아오른 우상혁은 기적처럼 2m35를 넘었다. 1997년 세워진 후 깨지지 않았던 기록(2m34)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기쁨을 주체 못해 가슴을 치며 포효했다. 그가 느낀 벅차오름이 화면을 뚫고 시청자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최종 순위 4위. 메달은 아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에게 반해버렸다. 올림픽을 진정 즐긴 우상혁은 최고로 멋졌다. “이제 다른 선수들이 저를 두려워할걸요. 파리올림픽에서는 제가 강력한 우승후보가 될 것 같습니다.” 당당한 표정과 자신감 넘친 말투는 우상혁의 다음을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다.

올림픽을 대하는 선수들의 자세는 달라져왔다. 은메달을 따도 금메달을 못 따 억울하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젊은 선수들은 이번에 유쾌하고 쿨한 모습을 보여줬다. 양궁의 김우진(29)은 “상대 선수가 나보다 더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고, 수영의 황선우(18)는 “와, 정말 오버 페이스였네. 아쉽지만 괜찮아요”라고 했다. 김제덕(17)은 양궁 개인전 32강에서 탈락한 후, 홀로 사대에 섰더니 부족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파이팅’만 넘치는 게 아니라 깊이까지 있다. 이들에게 올림픽은 즐기는 무대이자 좋은 경험이고, 메달을 따면 좋았겠지만 못 땄어도 세상이 무너질 일은 아니었다. 대범하기까지 했다. 피 말리는 승부처에서 양궁 안산(20) 선수는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가 외부적 요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해 준 일은 정말 감사하고 대견하다. 이들의 발랄한 도전을 보는 순간만큼은 무더웠던 여름도 청량했다.

보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한국 선수의 선전을 외치며 목청을 높였지만, 우리 선수가 안 나오는 경기에도 관심을 가졌다.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를 자신의 취향대로 즐겼다. 사람들은 더 이상 메달 색깔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금메달 개수를 헤아리고 우리나라가 몇 위인지를 세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메달보다는 세계적인 선수들 사이에서 우리 선수가 주눅 들지 않고 기량을 발휘했는지, 이기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었는지 주목했다.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를 궁금해했다. 졌어도 잘 싸운 경기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느낀 일은 또 있었다. 미국 ‘체조 여제’ 시몬 바일스(24). 리우올림픽 4관왕인 그에게 쏠린 관심과 기대는 엄청났다. 과도한 긴장과 중압감으로 그는 매일 올라가던 평균대에 서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트위스티스’라 불리는 마음의 병에 걸린 것이다. 그는 “공중에서 길을 잃었다. 온 세상의 짐을 진 것처럼 힘들다”며 금메달이 기대되던 4종목에서 기권했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많은 이들이 그의 용기 있는 기권을 존중하고 지지했다. 당신이 자랑스럽고 당신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는 “당신이 사랑했던 것이 기쁨을 빼앗는다면 한 걸음 물러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림픽 영웅이 되는 것보다는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건강을 해치고 마음을 다쳐가면서 1등이 될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BTS 노래 ‘윙스’에는 “난 내가 하기 싫은 일로 성공하긴 싫어/ 난 날 믿어 내 등이 아픈 건 날개가 돋기 위함인 걸”이라는 가사가 있다. 세상에는 할 일이 많고 분야가 많다. 더 이상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와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림픽은 끝났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시작이었지만 결국 선수들의 피 땀 눈물로 감동적인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올림픽에 참여해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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