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 잘 팔리면 불황이라던데… 철지난 이야기더라

판매·경기 분석 ‘포터지수’ 옛말
경기 상승 국면서 잘 팔려
자영업자수와도 다소 거리


올해 상반기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하며 몸값을 올리는 차가 있다. ‘국민차’ 아반떼나 그랜저도 아니고 논쟁거리를 몰고 다니는 전기차 테슬라도 아니다. 바로 현대자동차의 1t 트럭 포터2(포터)다.

포터는 지난달 국내에서 8804대가 팔렸다. 올 상반기 실적 축포를 터뜨린 현대차의 지난달 판매 차종 가운데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 말 기준 누적 판매량으로 따져봐도 포터는 총 6만915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다.

포터는 ‘짐꾼(porter)’이라는 이름 그대로 생계형 영세 자영업자들의 발이 돼 왔다. 소형 운수업 용도로 사용되는 포터는 경기 침체 국면에서 실직자들이 자영업을 시작할 때 주로 찾는다. 경기가 후퇴할수록 포터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포터 지수’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포터 수요가 치솟았던 올 상반기는 포터 지수 공식대로 경기가 불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포터의 연간 판매량과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경제심리지수(ESI) 추이를 비교해봤다. 경제심리지수는 민간 경제의 주체인 기업과 소비자가 현재 경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반영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동향지수(CSI)를 합성한 지표다. 100보다 높을수록 경기가 좋다는 뜻이고 반대로 100보다 낮을수록 나쁘다는 의미다.


분석 결과 포터 지수는 실제 통계 흐름과 다소 거리가 멀었다. 포터 판매량은 경기 상승 국면에 오히려 증가했고 하강 국면에 줄어드는 추이를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경제심리지수가 폭락할 때 포터 판매량은 전년보다 3532대 줄었다. 2009년 들어 서서히 경제가 회복되면서 경제심리지수가 100을 웃돌자 포터는 전년보다 1만4404대 더 팔렸다.

최근 들어서는 경기 하강 국면에서도 포터 판매량은 전년과 비슷하거나 유의미한 감소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경기 상승 국면에서 포터 판매량은 여전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시작됐을 당시 경제심리지수는 74.6까지 떨어졌다 연말이 돼서야 90선까지 회복됐다. 하지만 포터는 같은 해 9만5194대가 팔렸다. 경기심리지수가 더 양호했던 2014년(98.9)과 비슷한 판매고를 올린 것이다. 올 상반기에는 이미 지난해 판매량의 약 65%에 해당하는 매출을 보인다.

포터 판매량과 자영업자 수 사이의 인과관계도 뚜렷하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수는 2009년 600만명 선을 처음 밑돈 이래로 최근 560만~570만명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자영업자 수가 553만1000명으로 최저 수준을 보였는데 포터 판매량은 되레 사상 최고치를 앞두고 있다.


포터 판매량이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견고한 흐름을 이어가는 배경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우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의 증가다. 나 홀로 장사하는 사장님들은 최근 5년간 14만6000명이 늘었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주로 푸드트럭이나 개인 용달업, 과일 장사를 할 목적으로 포터를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용원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임대료를 내며 터 잡고 장사할 여유조차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들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2015년에는 기존 원주민이 개발로 인해 오르는 땅값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참이었다. 여기에 푸드트럭 관련 규제도 풀리며 포터 수요는 더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 시기와 맞물려 비대면 문화까지 확산하면서 1t 트럭을 이용한 택배 사업에 뛰어든 5060 ‘특수고용직’ 자영업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포터 전기차 모델인 ‘포터EV’ 등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터EV의 지난달 말 기준 누적 판매량은 9962대로 현대차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9147대)보다 앞섰다. 이는 정부가 전기 화물차 보급을 위해 1.5t 미만 전기 화물차를 영업용 번호판 총량제 대상에서 내년 3월까지 제외해준 영향이 크다. 전기 화물차는 무상으로 번호판을 신규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일반 화물차는 현재 시세 기준 영업용 번호판을 다는 데만 약 2500만~3000만원이 필요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전기차 전환 계획을 수립한 것도 포터EV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백화점과 함께 포터EV를 기반으로 하는 배송 서비스를 오는 10월까지 시범 운영 하는 등 업계 전반에 포터EV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향후 포터 지수는 점점 더 본래의 의미를 잃어갈 것으로 보인다. 기아의 봉고를 제외하면 경쟁 경상용차였던 한국지엠(GM)의 다마스와 라보도 올 상반기 단종돼 사실상 포터가 독점 지위에서 계속 판매량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서민 경제의 질적 측면을 고려해볼 때 포터가 승승장구하는 소식이 마냥 달가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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