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패션이다] 한때의 나로 끝나지 않으려면 길게 보자… 여기 이들처럼

<25·끝> 에필로그 : 불꽃과 풀꽃

시대를 풍미(風靡)한다고 할 때 풍미란 바람에 초목이 쓰러진다는 뜻이다. 천하를 호령(號令)한다고 할 때 호령이란 큰 소리로 명령한다는 뜻이다. 한때 초목도 쓰러트릴 정도로 목소리 컸던 사람 중에는 고인도 있고 현역도 있다. 살아있어도 산 것 같지 않거나 죽어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배우 이덕화와 가수 조용필, 공연연출가 김민기(위부터). 그들의 삶은 치열했으나 향기는 서로 달랐다. 중요한 건 여전히 그들이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DAY엔터테인먼트, YPC프로덕션, 학전 제공

오늘 예능의 그물에 잡힌 사람은 ‘도시어부’ 이덕화다. 뉴스에서 ‘법정에 온 전두환… 10분 뒤 꾸벅꾸벅, 20분 뒤 호흡곤란 퇴정’을 보고 드라마 ‘제5공화국’(2005 MBC)에서 전두환 역을 맡았던 이덕화가 생각났다. 연기자로 MC로 광고모델로 한때를 풍미한 바로 그 사람이다.

공채탤런트로 데뷔(1972 TBC)했지만 주말 버라이어티 ‘쇼 2000’(1981~1984 MBC)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1985~1991 MBC), 연말에 하는 ‘MBC가요대제전’(1984~1990)의 MC는 대체불가 이덕화의 몫이었다. ‘토토즐’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주말연속극 ‘사랑과 진실’(1984~1985) ‘사랑과 야망’(1987)이 방송됐는데 그 주인공 또한 이덕화였다. 심지어 쇼와 드라마 사이에 나오는 광고에도 얼굴을 비쳤다. 한마디로 ‘나만 믿고 따라와’였고 이른바 덕화의 전성시대였다.

‘지금 이 순간 여유로 다가와 날 부르는 그대’ 감미로운 광고 음악과 함께 이어지던 ‘멋진 남자 멋진 여자’라는 카피의 속옷광고에서 젊은 이덕화가 엘리베이터 문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치는 장면은 강렬했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라며 음료를 건네던 모습도 올드팬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비록 태풍이 미풍으로 바뀌었을지언정 이덕화는 여전히 광고에 등장한다. 20년을 넘긴 ‘모발 모발’과 함께 요즘은 자신의 유행어 ‘부탁해요’ 대신 ‘부착해요’라고 하면서 관절에 붙이는 소염진통제를 광고한다. 왕년의 스타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하는 느낌을 줬다면 광고효과는 반감했을 거다. 오히려 정반대다. 표정에 그늘이 없으니 팬들도 걱정이 없다.

방송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바로는 ‘부탁해요’ 말고도 ‘나와 주세요’ ‘보여 주세요’ ‘들려주세요’ 등 여러 멘트를 사용했지만 대중의 선택은 ‘부탁해요’였단다. 대중은 이런 사안으로 토론하거나 담합하지 않는다. 예능의 세계에서 억지로 되는 건 없다. ‘억지’란 잘 안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을 말한다. 억지를 부리면 후유증이 생긴다.

의사가 진단하는 인간의 수명은 심장과 호흡이 멈출 때까지다. 하지만 연예인으로서 수명이 다하는 순간은 그가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때부터다. 이덕화가 임예진과 함께 출연한 하이틴 영화 제목 중에 ‘진짜 진짜 잊지 마’(1976)라는 게 있는데 이 ‘부탁’이야말로 거의 모든 연예인의 희망사항이 아닐 수 없다. 1988년쯤 이덕화가 출연한 속옷광고는 지금 1988년생 탤런트 김수현이 모델이다. 20대들은 한때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사랑과 진실’을 모를뿐더러 그걸 쓴 작가의 이름이 동명이인 김수현이라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사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금시초문이면 어떤가. 영어로 하자면, 소 왓(So what)?

이번 회로 ‘예능은 패션이다’는 막을 내린다. 예능의 역사, 아니 약사(略史)를 상큼하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됐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엔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시대 중심(편년체)이냐, 인물 중심(기전체)이냐, 사건 중심(기사본말체)이냐. 지금 보니 ‘예능은 패션이다’는 뒤죽박죽 본말전도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 사람이 있었지’보다는 ‘그런 일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걸 지금 알아서 뭐해’라는 질문을 받을 때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쓴 것만은 확실하다. 그 사람, 그 작품으로 인해 예능, 나아가 세상의 명랑지수, 청량지수가 조금 높아졌다면 그가 받은 개런티나 저작권료는 가치가 충분하다.

이 글은 무엇보다 현장성에 치중했다. 들은 것, 읽은 것이 아니라 겪은 걸 중심으로 쓰다 보니 한계도 있었다. 친하다 보면 오히려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예능탐구서의 특성이라 치부한다. 시청자의 호불호가 있듯이 PD의 친소관계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거라 인정한다.

개인적으로 호형호제하는 유명인 중에 이덕화(1952년생)보다 한 살 많은 김민기(1951년생), 두 살 많은 조용필(1950년생)이 있다. 나는 그들을 무대 안팎에서 두루 만나봤다. 거의 40년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들의 삶은 치열했으나 향기는 서로 달랐다. 중요한 건 여전히 그들이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지금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 김민기의 ‘아침이슬 50주년’ 전시회를 다녀오면서 나는 지하철 안에서 ‘아침이슬’과 함께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읊조렸다. 그 노랫말 속에도 이슬이 나온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문화예술계에서 평생 불꽃으로 살 수는 없다. 그곳은 은하계보다 별들의 전쟁이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한때는 불꽃이었으나 평균은 풀꽃인 삶이 오히려 나아 보인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쟁점은 있을 것 같은) 김민기와 조용필이 어느 날 저녁 대학로에서 이슥토록 술잔을 기울였다는 얘기를 나는 오래전 당사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산중의 고수들은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표범들의 깊은 속을 어찌 짐작이나 하랴.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그들이 오르려고 발버둥 친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봉우리에 다다랐을 것이라 나는 해석한다.

조용필의 노래 ‘고독한 러너’에 이런 가사가 있다. ‘시작이라는 신호도 없고/ 마지막이라는 표시도 없이/ 인생이란 고독한 길을 뛰어가네’ 20여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마라톤 대회에서 마지막까지 외롭게 달리는 노인을 보며 저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했다.”

예능의 역사에는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다. 어떤 부분은 가십의 역사, 루머의 역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능에도 정도(正道)가 있을까. 정도(定道)는 없어도 정도(程度)는 있다. ‘그 정도면 된 거 같은데’ ‘아니 그 정도로는 어림없지’ 예능에서도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두루 통용되는 말이다. 모름지기 창의가 없으면 성의라도 있어야 한다.

연예인의 부침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옛날의 나를 말한다면/ 나도 한때는 잘나갔다/ 그게 너였다/ 아니 그게 나였다/ 한때의 나를 장담마라’(전승희 ‘한방의 부르스’ 중) 한때의 나로 끝나지 않으려면 길게 보는 게 유리하다. 원래 길이란 말 자체가 ‘길다’(long)에서 나온 말이다. 길지 않으면 길이 아닌 것이다. 그건 점이거나 선에 불과하다. 그가 걸어간 험난한 길이 후인들에게 편안한 길이 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희망과 소망은 다르다. 희망을 주는 사람은 있어도 소망을 주는 사람은 없다. 소망은 자신이 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개인의 소망을 집단의 희망으로 바꿀 때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질 것이다.

예능의 역사는 개인기록의 역사이면서 집단기억의 역사다. ‘관종’은 관중을 원하지만 관중은 대체로 무심하거나 무정하다. 집단의 기억에 남는 손쉬운 방법은 계속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띈다는 게 어디 ‘관종’의 뜻대로 되는가. 억지가 보이거나 자꾸 선을 넘거나 어두운 곳에 출몰하면 대중은 비정하게도 그를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워진다. 예능의 수학에선 분수를 알고 무리수를 범하지 않아야 점수를 딴다.

주철환 프로듀서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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