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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메타버스는 아류세계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최근 메타버스에 관한 폭발적 관심은 기술의 성숙도와 코로나19 상황이 만나서 생긴 특별한 현상이다.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메타버스를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가 생산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새로운 디지털 지구”라고 정의했다. 아바타는 현실의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게 해준다. 메타버스 안에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활동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새로운 디지털 세계를 만든다. 메타버스는 이렇게 인간과 세계의 향상과 확장을 가져다주는 기술이다.

언론 매체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메타버스에 관한 기사는 대부분 경이감과 기대감으로 색칠돼 있다. 물론 메타버스에는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메타버스가 가져다줄 수 있는 장밋빛 미래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고 해결하기 힘든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메타버스가 주는 혜택은 디지털 빈부격차에 따라 사회 양극화를 더욱 조장할 수 있다. 메타버스 거주민도 사람이므로 그곳에서도 사기, 폭력, 학대 등의 온갖 범죄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메타버스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증강돼 발현될 수도 있다. 메타버스가 가진 근본적 한계는 그것이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만든 임의의 세계라는 점이다.

메타버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것이 플랫폼 로블록스가 됐든 제페토가 됐든, 메타버스를 제작하는 업체는 창조주처럼 만물이 상호작용하는 법칙을 정하게 되고, 그 세계에 거주하는 존재는 모두 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것은 단순하게는 아바타가 움직이는 방식에 적용될 수도 있지만 복잡하게는 그 세계 속에서 존중받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정하는 데도 영향을 끼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운영하는 메타버스에서 가장 존중받는 가치가 무엇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공공 메타버스 플랫폼이 개발된다고 할지라도 그 세계도 무로부터 창조돼야 하므로 모든 것이 새롭게 정해져야 한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처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이 같은 한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메타버스 예찬론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비판적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특별히 교육계와 종교계는 메타버스에 관해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품성을 교육하는 학교나, 한 몸에 속한 지체로서 유기적 사랑의 관계를 강조하는 교회에서 대면 활동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물론 전달 내용에 따라 굳이 대면하지 않고 교육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다. 이참에 과감하게 많은 활동을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잉여 시간과 자원을 더욱 강화된 대면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강조점은 메타버스가 아니라 대면을 통한 인격적 만남에 둬야 한다. 메타버스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현실세계의 아류세계이며, 몸을 통해 살아가는 현실세계를 보조하거나 임시로 대체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지구가 황폐화돼 모두 지하 벙커에 살면서 가족 이외 사람들과의 일상적 관계가 메타버스를 통해서만 가능한 세상이 온다면 몰라도, 아직은 메타버스가 우리 삶의 주 무대가 될 수 없다. 메타버스를 잘 이해하고 활용할 때 이 세상은 더욱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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