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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이는 백조같은 삶, 겉으론 화려 물밑선 엄청난 발장구”

[도쿄서 만난 사람들] 배구경기 심판 유일한 한국인 강주희

강주희 심판이 지난달 25일 2020 도쿄올림픽 배구 경기가 열린 일본 도쿄의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배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 심판은 이번 올림픽 배구 종목의 유일한 한국인 심판으로 총 7경기를 소화했다. 강주희 제공

2020 도쿄올림픽엔 206개국 선수가 참가했다. 이들이 5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공정히 평가받으려면 일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 다국적 심판진이 꾸려져야 한다. 여자배구 4강 신화가 쓰인 배구장엔 강주희 국제심판이 유일한 한국인으로 활약했다.

사실 심판의 일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심판은 경기의 일부일 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선수들이어서다. 심판의 이름이 주목받는 건 오심이나 석연찮은 판정이 나왔을 때뿐이다. 강 심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각국 심판이 모여 대회 규칙을 함께 공부한 뒤, 일본의 대학팀을 섭외해 리허설 경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에 쓰일 태블릿, 기록 프로그램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수차례 확인했다.

강 심판은 이번 올림픽 총 7경기에서 호각을 불었다. 가장 힘든 건 격리생활이었다. 심판을 보거나 경기를 관전하는 목적 외엔 외출이 통제됐다. 강 심판은 지난 8일 국민일보와 만나 “코로나19 탓에 무관중 경기가 열린 것은 눈뿐만 아니라 귀로도 판정할 수 있어 오히려 편했다”면서도 “격리생활은 너무 답답했다. 숨이라도 틔우기 위해 많은 경기를 관전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래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한국의 선전 덕이다.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엔 주변 관계자들이 먼저 축하인사를 건네왔다. 강 심판은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15위 팀이 4위를 했다는 건 기적”이라며 “심판들은 물론 FIVB 임원들까지 축하를 건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느꼈다. 복도에서 만나는 선수들 얼굴도 밝으니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국제무대 최전선에서 일하다 보니 각종 뒷이야기도 가장 먼저 접한다. 강 심판은 케냐전 일본 주심의 오심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오심이 나온 이유론 경기 장면을 확대해 터치·노터치 여부를 판단하는 판독 심판의 자질 문제를 꼽았다. 강 심판은 “네덜란드 판독 심판이 제가 주심을 본 경기 때도 블로커 터치아웃이 문제 됐을 때 이어폰으로는 ‘터치’라고 말하며 화면으로는 ‘노터치’라고 내보냈다”며 “같은 판독 심판이 케냐전도 맡았는데, 비슷한 실수를 해 일본 주심이 혼동한 걸로 보인다”고 했다.

국제무대 속 유일한 한국인이란 타이틀은 영광이기도, 중압감이기도 하다. 배구 선진국 심판보다 노력하지 않으면 폄하되기 일쑤다. 강 심판은 “세계 배구계엔 유럽의 입김이 세다. 임원도, 심판도 유럽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실수는 덮이는 경우가 많다”며 “(김)연경이도 그렇겠지만 저도 말도, 행동도 남들보다 10배는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화려해 보이지만 물밑에선 엄청나게 발장구치는 백조 같은 삶”이라고 했다.

세계 속에서 조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도 국제심판들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 강 심판도 백신 접종 명단에서 누락돼 문화체육관광부에까지 직접 연락해야 했다. 강 심판은 “모든 걸 혼자 알아보다 1차 접종밖에 못 받고 VNL에 참가했다”며 “도쿄에서 만난 핸드볼 심판들도 백신을 알아서 해결했다고 했는데, 협회나 체육회 차원에서 심판들도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두 번의 올림픽을 소화한 강 심판의 첫 번째 목표는 2024 파리올림픽까지 세 번의 올림픽을 경험하고 은퇴하는 것이다. 여성 배구 심판으로선 한국 최초의 업적이다. 아시아배구연맹(AVC)이나 FIVB의 임원에 도전한다는 꿈도 갖고 있다. 강 심판은 “첫 번째, 두 번째 올림픽에 악을 쓰고 임했다면, 세 번째 올림픽은 심판 인생을 정리하며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강 심판은 아직 한국배구연맹(KOVO)과 차기 시즌 계약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컵대회에는 나서지 못하지만, VNL이 열린 이탈리아 리미니부터 일본 도쿄까지 쌓인 여독을 푸는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한 달간 열심히 여행할 생각이에요. 휴가라고 생각하고 푹 쉬고 싶네요.”

도쿄=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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