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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재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제민(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한국 경제는 작년 -0.9% 성장해 주요 선진국 중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좀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재정의 역할이다. 대규모 위기 하에서 재정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재정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이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교해 보면 드러난다. 그 위기에서 재정이 한 역할은 경제 성장에 대한 정부의 기여도에서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다음 해인 2009년 민간의 성장기여도는 -1.5% 포인트인데, 정부 기여도가 2.3% 포인트여서 0.8% 성장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2020년에는 민간 기여도가 -1.9% 포인트인데 정부 기여도가 1.0% 포인트밖에 안 돼서 -0.9% 성장했다. 2009년에 비해 민간 기여도가 더 낮았는데 정부 기여도는 반도 안 되는 바람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다.

2020년 한국 경제가 주요 선진국 중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것은 방역을 잘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민간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정부가 투입한 재정자금은 국내총생산(GDP)의 3.5% 정도로 다른 나라에 한참 못 미쳤다. 더 놀라운 것은 2020년 정부의 성장기여도 1.0% 포인트가 2019년 1.6% 포인트보다 낮다는 것이다. 2019년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등 불리한 여건 때문에 민간 기여도가 0.7% 포인트밖에 안 됐지만, 정부 주도로 2.2%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2020년은 2019년에 비해 민간 기여도가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 정부 기여도도 같이 떨어짐으로써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다.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올해 더 떨어지고 있다. 2021년 상반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9%인데, 정부 기여도는 0.3% 포인트에 그쳤다. 아직 경기 회복은 갈 길이 먼데,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기여도의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 경기 부양에는 정부 소비도 중요하지만 정부 투자가 더 중요하다. 정부 투자는 경기 부양을 하되 생산을 직접 늘린다는 장점이 있다. 생산은 세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덜하다. 정부 소비는 의료 교육 직업훈련 등으로 성장잠재력을 올릴 수 있지만, 그 효과가 간접적이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이라는 점에서 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 나온 뉴딜 정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디지털뉴딜, 그린뉴딜 모두 미래 지향적 투자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당시 정부는 뉴딜 정책을 위해 2025년까지 국비 114조1000억원을 재정 투자에 넣기로 하고 작년 추가경정예산과 올해 예산에도 반영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경기 부양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작년 정부 투자의 성장기여도는 0.1% 포인트로 2019년 0.5% 포인트보다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 정부 투자의 성장기여도는 작년 동기 대비 -0.5% 포인트다. 뉴딜이라는 정책 기조와 달리 정부 투자의 성장기여도는 마이너스인 것이다.

재정 정책의 효과가 국민계정상의 성장기여도로 이어지는 데는 여러 다른 변수가 함께 작용할 것이다. 정책 효과가 나는 데 시차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장기여도에 나타난 통계로 보면 재정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평가는 불가피하다. 왜 그렇게 됐는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공무원들이 재정건전성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방어적·소극적 대응을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혹시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정부 투자나 소비를 줄인 것은 아닌가. 물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는 있지만, 그 순효과가 정부 투자와 소비의 성장기여도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정부는 지난달 뉴딜 정책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뉴딜 2.0 계획을 발표했다. 뉴딜 2.0에서는 2025년까지 재정 투자를 160조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휴먼뉴딜로 불평등 확대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내용이 있어서 정부 소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실제로 올해 추가경정예산이나 내년 예산의 편성이나 집행에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바깥에서는 정부 내에서 어떻게 일이 전개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의 엇박자 같은 것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통계로 보면 지금까지의 재정 정책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데는 밖에서 본 통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제민(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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