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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비스마르크 국가전략 리더십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한국의 국가 전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멈춰 섰고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지만 북·미는 물론 남북 대화도 재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선이 13개월 만에 연결됐지만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북한은 우리의 통화 요청에 응답하지 않고 군사 도발을 암시하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수십 개 제후국으로 분열된 독일을 1871년 통일하고 20년간 유럽의 평화를 빈틈없이 주도한 비스마르크에게 전략적 난관을 넘어설 지혜를 배워본다. 통일보다 평화가 더 중요한 현 상황에서 세 번의 전쟁을 통해 통일을 달성한 비스마르크에게 배운다는 것이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방식은 달라도 결국 통일과 평화 모두를 달성한 그는 시공을 초월해 상당한 가르침을 준다.

첫째, 그는 초지일관 철혈 정책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했다. 우리 역시 국가안보를 외세에 의존하기보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킨다는 각오로 국방력을 강화하고 자주적인 대북 억지력 구축을 우선시해야 한다. 자주 국방력을 강화해 전시작전권 전환을 조속히 달성하고 대북 핵 억지력을 확보하면서 한·미동맹도 호혜적 동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독일 통일에서 주도권 경쟁을 벌일 오스트리아와 연합해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는데 사전에 러시아의 우호적 입장, 프랑스의 중립, 이탈리아의 지원을 얻어 유리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고 단숨에 승리했다. 부국강병과 전방위 우호 외교가 승리의 기반이 됐다.

셋째, 비스마르크는 빈을 점령하지 않고 휴전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통일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는 통일을 위한 보불전쟁 때도 주변 강대국들이 중립 또는 독일 편을 들도록 치밀한 사전 외교를 펼쳤고, 프랑스의 선공을 유도해 국제적 명분도 얻어 승리했다. 특히 힘의 사용을 절제하고 오스트리아의 체면을 살려준 것은 대독 보복 공격 대신 중립을 끌어냄으로써 승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게다가 그는 베르사유궁에서 독일제국 선포, 빌헬름 1세 황제 대관식, 파리 승전 행진만 하고 바로 철군함으로써 프랑스의 체면도 고려해줬다. 이는 우리가 1970년에 북한과 경제력이 비슷하다가 현재 50배나 더 커져 체제 경쟁에서 사실상 승리했지만, 북한에 일방적 강압으로 핵 포기를 종용하거나 북한 인권을 앞세워 소모적인 남북 대립을 지속하는 것보다 상호 안보에 입각한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과 평화 공존, 호혜적 협력 추구가 더 현명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넷째,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는 3제협상, 3국동맹, 독·러 재보장조약을 체결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프랑스를 고립시키면서도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아프리카 진출을 후원하는 등 세력 균형을 주도해 20년간 유럽 평화를 지켰다. 우리도 한·미동맹을 대외 전략의 주축으로 삼으면서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게 지혜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수주의자인 그는 사회주의자를 탄압해 민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세계 최초로 건강·산재·연금 보험을 시행해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정 계층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성장과 복지를 동시 추구함으로써 국민 통합과 경제 발전 모두에 성공한 것이다. 현재 대선 국면에서 후보자의 경륜과 정책 경쟁보다 이념이나 개인적인 흠집 내기 차원의 비난이 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 후보들에게 부국강병, 성장과 복지, 통일과 평화, 국민 통합을 달성한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리더십이 귀감이 되기를 기대한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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