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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조롱 받는 대선판

지호일 정치부 차장


오늘도 우리의 대권 주자들은 도매가로 팔려나간다. 조롱과 비방, 악담, 중상모략 따위로 ‘양념’되는 냄비 속 생선 같은 처지. 많은 이들이 혀를 끌끌 차지만 누구 하나 조롱에 중독된 정치를 끊으려 하지도 않고, 끊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대선판 전체가 흙탕물에 휩쓸려 퇴행해 갈 뿐이다.

‘쥴리의 남자’ 벽화 논란만 해도 그렇다. 미확인 풍문을 소재로 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를 대놓고 비방한 그림이 서울 종로 골목에 내걸리고 그 위에 검은색, 흰색 페인트가 싸움하듯 덧칠해지는 장면은 지금의 정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서글플 정도다. 애초 ‘호스티스 쥴리’는 친여 성향 유튜브 채널과 윤석열 반대자들이 합작해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일 공산이 크다. 쥴리 창조자들은 검증이란 명분 뒤로 숨지만, 본질은 검증으로 위장한 정치 폭력. 후보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려는 증오 내지 적의의 분출, 그 이상은 아니라고 본다.

눈 뜨기가 무섭게 조롱의 먹잇감으로 던져지는 건 다른 후보들도 매한가지다. 여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만 해도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등 사생활 관련 악담이 지긋지긋한 스토커처럼 들러붙어 있고, 난데없이 등장한 ‘군필 원팀’ 포스터에 소년공 시절 부상으로 굽은 자신의 왼쪽 팔 사진까지 공개해야 했다.

삼류 정치에 대한 한탄은 오래된 일이지만, 요즘같이 인신공격형 비방이 범람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구를 탓하랴. 일차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거늘. “정치인은 인간을 두 종류로만 나눈다. 도구 아니면 적”이라고 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은 100년이 지나 한국에서 드라마틱하게 구현되는 중이다. 여당부터가 끊임없는 편 가르기와 적 만들기를 통해 생성된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고,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제1야당도 이에 부역하는 정치로 연명하고 있다. 그 산물이 조롱과 악담에 눌린 정치의 추락일 터.

대선이 다가올수록 앞서는 후보, 뒤쫓는 후보 가릴 것 없이 경쟁자의 0.1% 지지율이라도 깎아내리려 앞뒤 안 잰 비방전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나를 향한 손가락질을 너를 향한 손가락질로 덮기 위해 후보의 말 한마디까지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여기에 당대표와 같은 당 후보 측은 연일 말폭탄을 날리며 교전 중이니, 여의도 꼴이 말이 아니다.

혐오의 정치는 대중에게까지 파고드는 양상이다. 이는 ‘팬덤 정치’와 결합돼 종종 집단적 공격성으로 표출된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선거 승리를 지상 과제로 삼는 강성 지지층은 사이버 공간의 보병으로 매일매일 패싸움을 수행한다. 이재명 지사에게 ‘지사직 사퇴’를 제안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에게 “휠체어 타고 지옥길에 가라”는 식의 저질 문자 폭탄이 쏟아진 사례가 이를 상징한다.

비난과 조롱이 먼저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 비전, 정책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소모적 비방과 조롱이 정당한 검증과 비판의 공간을 위축시키고, 발전적 정책 경쟁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보에 대한 조롱 안에 성별, 지역, 세대를 갈라치는 악성코드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이 온갖 악의적 조롱과 악담으로 범벅이 된 후보들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되는 일인가. 어느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오염된 물에서 나온 지도자가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나.

지호일 정치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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