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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백신 사재기의 대가

이영미 영상센터장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된 건 지난 봄이었다. 겨울을 지나며 급락했던 하루 확진자 수는 3월 초 1만명대에서 한 달 뒤 8만명대로 치솟더니 5월 초에는 40만명을 넘어섰다. 가뜩이나 빈부 의료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감염병은 참극을 만들었다. 화장 안 한 시신은 강에 버려졌고, 굶주린 들개는 물에 퉁퉁 불은 시신을 물어뜯었다.

인도에서 지옥도가 펼쳐지던 그 봄, 미국에서는 백신 잔치가 한창이었다. 야구장, 약국, 심지어 박물관에서도 백신을 무료로 줬다. 미국인들은 해변, 공원, 레스토랑에서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었다. 백신 공급이 넘치자 관광객에게까지 차례가 왔다. 텍사스 같은 접경 주에서는 멕시코인 수만명이 국경을 넘어 백신을 맞았다. 뉴욕시는 지하철에서, 알래스카는 공항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백신접종 기회를 줬다. 일자리는 늘고 돈은 돌고 주가는 오르고. 초여름 미국은 팬데믹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듯 보였다.

백신 접종률과 함께 미국의 자신감도 한껏 부풀어 오르던 그때. 아시아 대륙에서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조만간 미국과 유럽을 휩쓸 인도발 델타 변이였다. 5월 초 미국 확진자의 1%에 불과하던 델타 변이는 최근 93%까지 급증했다. 1만명 안팎까지 떨어졌던 일일 확진자도 15만명을 돌파했다. 영국 등 유럽 상황도 엇비슷했다. 글로벌 팬데믹에서 변이는 필연이다. 하지만 ‘14억 인구 대국’ 인도라는 비옥한 토양이 없었다면 델타 변이가 역대급 위력을 갖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감염자가 많아질수록 변이는 잦고 강해진다. 인도에서 4개월간 2000만명이 감염됐다. 바이러스가 최상의 배합을 실험할 2000만번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 덕에 더 세고 영악해진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벽을 쌓는 미국과 유럽을 재침공했다. 역습은 대성공이었다.

미국은 낮은 접종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팝스타를 동원하고 인센티브를 줘도 접종 완료율은 제자리걸음이다. 상황이 나빠진 게 오직 미국인들의 백신 거부감 때문일까. 지난 봄 미국이 진짜 걱정했어야 하는 문제는 미국의 접종률이 아니라 인도였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미국이 접종률 40%를 넘길 때 3%에 머물던 인도의 접종률은 지구적 과제였다. 미국의 선택은 실망스러웠다. 미국은 인도를 돕는 대신 백신을 싹쓸이했다. 3월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구매 계약한 백신은 인구 대비 5.5배. 캐나다는 6배, 영국 4.2배, 독일 3.9배였다. 부국들이 사재기에 눈이 벌게진 사이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 인도는 백신 부족에 허덕이다 코로나 대폭발을 맞았다. 인도가 델타 변이의 거대한 배양접시로 돌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백신 원료 수출까지 금지했다. 인도에는 결정타였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약한 자는 고통을 겪는다. 슬프지만 그게 세상 이치다. 그러나 약자에게는 약자의 복수가 있다. 백신 초강대국 미국을 휘청이게 만든 변이의 반격은 가난한 나라의 가장 무력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 속에서 만들어졌다. 돈과 힘으로 장벽을 쳐도 바이러스는 국경을 넘고, 약자의 불행은 기어이 강자도 불행하게 만든다. 그게 좁디좁은 지구에 사는 인류의 숙명이다.

팬데믹 덕에 국지적 리더십의 한계를 깨닫게 됐다. 서구의 리더십은 국경을 넘는 문제 앞에서 무지하고 이기적이었다. 지구적 문제가 바이러스뿐일까. 지구온난화는 어쩔 건가. 미적대다간 달궈지는 지구 위에서 사이좋게 불타 죽을 판인데. 탈국경의 정치적 힘을 꿈꾸다 대선 앞에 달아오른 거대 양당을 보고 막막해졌다. 저런 권력의 회오리에 대고 기후 위기니, 글로벌 리더십이니 얼마나 무력한 구호인가.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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