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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구슬이 서 말이라도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도쿄올림픽이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무더위와 코로나19를 딛고 분투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만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쳐 아쉽다. 메달 순위 상위권엔 어김없이 유엔의 다섯 상임이사국과 2차대전을 일으킨 세 추축국 등 열강이 포진해 있다. 지난 40년 가까이 우리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뿌듯해했다. 그런데 이번엔 뉴질랜드나 쿠바보다도 순위가 뒤졌다. 시차가 없고 기후가 비슷한 이웃에서 대회가 열렸는데도 그랬다.

영국 리버풀대학의 스포츠 경제학자 데이비드 포레스트에 따르면 국가별 올림픽 성적은 국력 즉 인구, 소득 수준과 정치 시스템에 좌우된다. 그렇다면 우리 국력은 정점을 지나서 벌써 하강 국면에 들어선 걸까. 우선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7년부터 줄고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최근 2년 잇달아 감소했지만 올해 4%가량 반등할 전망이라 인구만큼 비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물가를 올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0년마다 2% 포인트씩 내려가고 있다. 지난달 한국금융연구원은 지금의 경제사회 구조와 관습 등이 바뀌지 않는 경우(중립 시나리오) 2030년과 2045년 잠재성장률을 각각 0.97%, 0.6%로 추계했다. 구조 개혁으로 생산성 등이 올라가면(낙관적 시나리오) 이 성장률은 각각 2.45%와 2.08%로 높아진다. 반대로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구조 개악이 진행되면(비관적 시나리오) 성장이 거의 멈추거나(0.2%) 뒷걸음치게(-0.56%) 된다. 시나리오별 성장률 격차는 1~2% 포인트 남짓이다.

그깟 1~2% 포인트 차이가 대수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차이도 누적되면 엄청난 격차로 벌어진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65년 동안 우리 경제는 물가상승분을 빼고도 연평균 7.2% 성장했다. 매 10년 실질국민소득이 2배씩 불어난 셈이다.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12배, 손자녀는 조부모보다 소득이 100배나 뛰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연 2%씩 성장하면 소득이 갑절이 되는 데만 36년 걸린다. 한 세대나 기다려야 한다. 중립 시나리오대로 2030년 성장률이 연 1%가 되면 소득이 2배가 되기까지 꼬박 72년, 2045년 연 0.6%면 무려 120년이나 걸린다. 성장률 1% 포인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더 큰 문제는 포레스트가 지적한 정치 시스템이다. 특히 우리의 고질적인 ‘뺄셈 정치’는 국력을 깎아내리는 주범이다. 대선 후보를 뽑는 여당 경선의 줄거리도 편 가르기와 네거티브 공세다. 안팎의 험준한 파고를 헤쳐갈 선 굵은 비전이나 차분한 정공법은 보이지 않는다. 경선을 앞둔 국민의힘은 말꼬리 잡기와 품격 없는 기 싸움에 당대표까지 뛰어들어 어수선하다. 같은 당 동지끼리도 그럴진대 본선에선 어떤 이전투구가 벌어질까. 원수처럼 치고받다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앙금을 털고 숙의와 협치, 동반과 공생을 좇게 될까.

대통령제에 내각제가 가미된 우리 정체(政體)는 그동안 대선 승리가 곧 정권 창출로 여겨지면서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단점만 쌓이게 됐다. ‘전부냐 전무냐’로 귀결되는 기형적인 대권에 죽기 살기로 매달린 탓이다. 게다가 21대 국회는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에다 상임위원장마저 독식해 대통령제의 장점인 권력분립이 아예 실종됐다. 총선이나 대선 행정을 책임지는 국무총리와 선거 주무 부처(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장관까지 현역 정치인이 맡는 일탈도 개의치 않는다. 내각제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선동가를 걸러내고 유능한 리더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내각제의 장점이 구현되는 것도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무난하게 통과하지만 의원 겸직 각료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다. 숙려와 중재 역할을 할 상원이 없으니 졸속 과잉입법에 제동을 걸기도 어렵다.

세계 랭킹 14위였던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예상을 깨고 4강에 올랐다. 학교폭력 논란으로 주전 둘이 빠지자 오히려 똘똘 뭉쳐 더 잘 싸웠다. 국민통합과 결속력은 국력의 가늠자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닌가. 군사력에서 앞선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에 밀린 것도 지도부 내분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를 제압하기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생의 절충안을 모색하는 ‘덧셈 정치’가 뿌리내려야 한다. 반대편을 아우르는 도량이 절실하다. ‘뺄셈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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