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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유년의 여름 이야기 셋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여름은 소란이 번성하는 계절/ 새들의 산부인과병동인 야산에 새 새끼들/ 울음소리 질펀하고 무논에서 둑으로/ 무리 지어 튀어나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며/ 타작마당 콩알들처럼 여기저기/ 가지에서 쏟아지는 매미들 떼창에 귀가 먹먹하다/(중략)/ 큰비 내려 계곡과 냇가에서 갑자기 분 물이/ 변성기 소년의 성대처럼 괄괄 소리 내어 흐르는데/ 비 갠 하늘에 나타난 비행기가/ 폭음을 내려놓고 사라진다.’(졸시, ‘즐거운 소란’ 부분)

어린 시절 방학이면 입 하나라도 덜려는 속셈으로 친척 집을 며칠간이라도 다녀왔다. 나는 집을 떠나 상거 이십 리 읍내(강경)에 소재한 큰고모 집에서 열흘 남짓을 보내곤 하였는데 더디게 가는 시간이 징역을 사는 일처럼 길고 지루하기만 했다. 큰고모와 고모부는 떡방아 집과 기름집과 솜틀집을 겸하여 경영하느라 늘 바쁘게 지냈고, 나보다 십 년 연배인 고종사촌형은 아침부터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하릴없이 나는 집 앞, 유서 깊은 ‘성심 약국’ 근방을 배회하거나 빈방을 뒹굴면서 시간과 대결하며 악전고투했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낯선 미로를 돌다가 우연히 모퉁이 국숫집에서 소면을 말리는 장면을 만났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햇볕을 쬐며 말라가는 면발들이 신기해서 한참을 넋 놓고 봤다. 내 정신도 국숫발처럼 하얗게 표백되는 느낌이었다. 이러구러 형기를 마친 죄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반기는 이가 없었다. 지금은 두 분 다 강을 건너가시고 솜틀집도 약국도 없어졌지만 그 시절 고무처럼 질긴 권태의 영상은 흐릿하게나마 머릿속에 흑백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집 앞 우물곁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팽나무가 스무 평 남짓 그늘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늘 속으로 방물장수며 ‘아이스께끼’ 장수가 들어와 부은 발등과 투덜대는 무릎을 달래다 갔다. 아이스께끼 장수는 가끔 우리 꼬맹이들을 불러 모아서 위험한 제안을 했다. 빈 병이나 고무신을 가져오면 아이스께끼를 준다는 거였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혀 안에 단팥 섞인 얼음의 달짝지근한 맛이 한가득 고여 참기가 어려웠다.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달려가 눈에 불을 켠 채 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흔하던 빈 병 하나가 없었다. 한참을 헛심을 쏟고 난 뒤 뒤꼍을 돌아 나오는데 뜰방에 바닥을 보인 채 널브러진 아버지의 검정 고무신이 불쑥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서까래가 들썩이도록 코를 골며 오수에 빠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고무신을 들고 나가 아이스께끼와 바꿔 먹었다. 아이스께끼 장수가 마을 초입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얼음과자가 녹고 손에는 딸랑 막대기만 남아 있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저녁도 거른 채 동네를 쏘다니다 어둠을 틈타 몰래 사랑방으로 잠입하니 나 대신 종아리를 맞은 연년생 동생이 울음 자국이 남은 얼룩덜룩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여름의 저수지는 노천학교였다. 아침 숟가락 내려놓기 바쁘게 악동들은 저수지로 등교했다. 노는 일이 공부라 미역을 감고, 물싸움을 벌이고, 소쿠리에 된장 주머니를 달아 민물새우를 잡았다. 서리해 온 것들로 요기를 하고, 물 위에 누워(송장헤엄) 하늘이 방목하는 구름을 실눈에 담고 몽롱에 취했다. 바닥이 궁금하여 물속에 물구나무를 섰다가 불쑥, 농약 마시고 죽은 당숙의 얼굴이 떠올라 소스라치기도 했다. 젖어 파래진 몸을, 햇빛에 달구어진 너럭바위에 널면 새들이 물똥을 갈겼다. 검푸른 담뱃잎을 지게 가득 쌓아 어깨가 움푹 패도록 지고 오는 아버지가 저수지 갓길에 불쑥 나타나면 눈에 띌세라 잽싸게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전신의 물기를 털어내며 둑 아래 가축처럼 쓸쓸한 마을을 바라볼 때 고요가 지글지글 끓고 버스가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경사진 신작로를 끌며 가고 있었다. 슬금슬금 내려오던 산그늘이 저수지를 완전히 덮고 나서야 하교를 서둘렀다. 추억은 더위를 먹지 않는다.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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