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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나는 영원히 슬프다

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팔복의 말씀은 읽고 또 읽어도 새롭습니다. 그 가운데 ‘애통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는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 애통은 자기 죄에 대한 통한의 회개도 되지만 이웃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는 슬픔으로도 해석됩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윤동주는 시 ‘팔복’에서 이렇게 여덟 번을 적습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리고 마지막 한 단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철저히 홀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 자신의 영혼을 드리고 받은 응답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팔복 가운데 그간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심령의 가난함, 온유함, 의에 목마름, 긍휼함, 마음의 청결함, 화평함, 의를 위한 핍박 받음…. 저는 애통함이라 봅니다. 슬픔이라 봅니다. 연민이라 봅니다.

예수를 영접한 수많은 영혼이 하나님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마르자 더는 애통해하지 않았고 더는 고통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애통함이 없는 가난은 남을 의지하며 사회를 탓합니다. 애통함이 없는 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명예로 가져갑니다. 애통함이 없는 화평은 과시하기 위한 화목과 같습니다. 슬픔 없는 기도가 모이면 물질의 복만 추구하는 교회를 만들고, 비릿한 제사장을 키웁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초대 교인들은 핍박으로부터 애통해했습니다. 가난이야 이웃도 함께했으므로 같이 이겨나가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다 해서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핍박받는 애통이 오죽했겠습니까.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찬송이 그 슬픔의 노래입니다.

그럼에도 초대 교인들은 떡을 나누며 가난한 자를 일으켜 세우고 아픈 자를 낫게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전쟁과 그 직후의 혼란 가운데서 성도는 마음이 청결했으며, 장로는 온유하고 청빈했고, 목사는 의롭고 긍휼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부흥했습니다. 팔복의 마음과 태도를 보인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지요. 결코 성도가, 장로가, 목사가 성취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중직자들이 ‘자수성가의 신앙’을 자랑합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어려운 시절 이농해 도시 변두리의 ‘지상의 방 한 칸’을 꿈꾸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전도의 손길로 예수를 믿고 삶이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심령이 가난했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그 복을 죄 사함으로 여기고 더는 애통해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는 그런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되레 교회 부흥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 의에 목 말랐다면 미래를 보고 제자 교육에 힘썼을 것입니다.

슬픔이 없는 교회는 경영 위주로 조직화되고 시스템화됩니다. 자영업자의 속울음에, 해고당한 노동자의 탄식에, 취업을 못해 풀 죽어 있는 청년들의 한숨에 습기 없는 말을 건넬 뿐입니다. 사역 매뉴얼이 적용될 뿐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지 못한다면 국가의 사회복지 시스템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톨스토이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추위에 떨던 천사 미하일이 가난으로 애통해하던 가족에게 찾아갑니다. 그 가족은 끼니가 없는 가운데도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온 그 천사를 맞이해서 먹던 감자를 나눕니다. 그들은 6년간 고락을 같이합니다. 그리고 미하일은 그 가족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고, 무엇으로 사는지를 깨닫습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끊임없이 말합니다.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넘쳐 나는 게 사랑입니다. 교회의 사랑과 세상의 사랑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애통함이 없는 사랑은, 슬픔이 없는 사랑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니 슬픔을 이기려 마십시오.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를 은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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